예전에 나는 취미를 가질 시간이 없을 만큼 꽉 채운 하루를 산 때가 있었다. 그러다 급 이사도 오고 일은 여러 가지 이유로 폐업을 하게 됐다. 그러니 내 삶은 늘어져버린 고무줄처럼 빈 시간이 생겼고 오랫동안 허무했다. 그때 난 친구를 만나 수다 떨기도 술을 벗 삼아 즐기기도 잘 맞지 않았다. 아이에게 올인하는 삶도 체질이 아니라서 혼자 할 수 있고 한 번도 안 해본 걸 하고 싶었다. 그렇게 가드닝이란 취미를 가졌고 이 소소한 취미가 일상에 많은 부분 꽉 들어찼을 때가 있었다. 너무 비싼 화분, 화초는 아예 눈독 들이지도 못했고 적당한 선에서의 화초를 조금씩 사 모았다. (비싼 품종도 유행이 지나니 저렴해지기도 했다. ) 그렇게 취미에서 일상의 부분처럼 되었다. 양치하듯 물을 주고 3초 만에 시든 꽃을 정리했다.
이번해에 아이가 학교에 갔다. 정신없이 아이를 케어하느라 예전처럼 가드닝에 집중할 수 없어서 걱정도 많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문득 방치해 둬서 기대조차 않았던 작은 정원은 봄을 맞아 새잎을 내기도 하고 연둣빛 꽃대도 올리려 준비하고 싱그럽게 있었다. 내가 돌보지 못한 화초들에게 미안해서 못 본 척하다가 우연히 앉아 붕 뜬 마음을 진정시키려는데 시선이 꽂혔다. 꽃들이 마치 나 좀 보라는 듯이 다들 활짝 피어있었다. 학교적응에 집중하느라 아이만 지치는 게 아니었다. 갑자기 들이닥치는 인간관계, 또 학년에 맞게 해내야 하는 과업들 등등에 지쳤던 나였다. 그동안의 나의 보살핌에 보답하듯 담담히 또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화초들에게 위로를 받았던 순간이었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텅 빈 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 마치 폭풍전야처럼 '내게도 이런 시간이 허락된다고?' 싶은 나만의 시간이 갑자기 찾아온다. 그때는 그 여유가 낯설고 쓸모 없어진 것 같아 방황했던 나처럼 당황할 것 없이 자신만의 몰입할 무언가에 몰두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라본다.
그 안에서 작은 성찰을 할 여유도 생기고 또다시 바빠지는 시절에 그때를 바라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에 위로와 휴식이 될 것이다.
그때의 최선에 위로받는 당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