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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

by 미니작업실



수행을 달리지만 꼭 한 번씩 내 밑바닥을 보고야 마는 일이 생긴다.

잘하고 있는 것 같다가도 이번에도 낙방을 하고 말았다.

수행을 하면서 아만심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이 정도면 꽤 열심히 수행하는 불자라면서 뿌듯해했다.

우리 집 살림살이를 하면서 아이들이 단원평가를 치듯 내게도 꼭 시험이 다가온다. 내게 얼마나 마음자리가 비워졌는지 빈틈을 노린다. 집이 모두 더럽다면 한바탕 대청소를 하겠지만 거실은 제법 깨끗해 손님을 초대해 보면 꼭 치우지 못한 방문을 열어 내 밑바닥을 보여주게 되듯. 어느 날 갑자기 방문이 열린 것처럼 시험이 들어온다. 때로는 인간관계가.

어쩔 때는 가족관계가.

금전적인 문제가...

또 엄마노릇은 말해 뭣할까?


달이 차면 기울듯이 잘하고 있다고 믿는 수행의 만족감도 내려놓아야 한다.

그저 묵묵히 그저 겸손하게 살림살이를 다듬어야 한다.

내게는 수행은 공부요. 살림살이는 시험 같다.

그 긴장이 잘하고 싶고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오히려 시원한 머리, 편안한 마음자리를 잊게 만든다.

살림살이와 수행을 동시에 최고로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

그 완벽주의에 삶을 직조할 때 그 실을 너무나 팽팽하게 당겨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만든다.

그 모든 나의 서툼을.

만족스럽지 않음을.

급하게 만족하고 싶은 마음을.

성급하게 완성만 하고 싶은 달음질치는 마음을.

실수를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을.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내려놓는다.


수행자가 짐봇다리 달랑 가벼이 들고 가듯.

내 마음도

내 살림살이도

떠나는 수행자의 짐봇다리 만큼 가볍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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