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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식어갈 때

알아차리기

by 미니작업실

일상에 잔잔한 변화를 주고자 가드닝을 하게 되었다.

욕심과 내 끈기, 또 잔잔한 기쁨의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마음은 이미 식어가고 있는데 보는 즐거움이 좋다면서 자꾸 설득하고 있었다.

봄이 와서 또 봄 화초를 보면서 즐거움에 잠시 또 취해있었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정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애들을 처분하는 게 아니라 베란다 가드닝으로 옮기고 지금 있는 애들로 충분히 키우고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더 늘이지는 말아야겠다는 선이 생겼다.

취미는 어디까지나 기쁨으로 누려야지 이게 숙제가 되거나 족쇄처럼 돼서는 안 되겠다.

베란다 가드닝 하기에 날씨도 온화해졌고 그 온기와 날벌레, 진딧물이 등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베란다 가드닝으로 전환을 할 타이밍이기도 하다. 편하게 약제도 뿌리고 관리하려면 베란다 가드닝으로 옮기는 게 최선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잔잔한 가드닝이 나에게 위로가 된 적이 참 많았다.

그 위로로 나는 지금까지 잘 지내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즘의 시간은 어느 시간대 보다 나에게 더 중요한 시기 같다는 직감을 해본다.

평소보다 밀도 높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아버지는 예전에 암 수술을 하시고 비교적 잘 지내시는 편이셨다.

그렇지만 연세도 있고 신체적으로도 약해지시는 게 느껴진다.

신체가 약해지니 정신적으로도 사인이 오고 있었다.

경미하긴 하지만 치매 증세가 나오고 있다. 치매의 증상 중에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은 둘째거니와 감정 통제가 안되고 수술을 했기에 식단 조절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마저도 인지기능이 약해지니 고약한 사건들이 매번 벌어지곤 한다. 그런 과정을 어머니는 잘 견디고 계신다. 나에게 다 말해주지는 못하시겠지만 한 번씩 버거운 사건이 숙제처럼 시험처럼 다가온다.


이런 사인은 내게 일상에 잔잔바리를 빼고 중요한 것을 잘 챙기라는 신호로 들린다.


그리고 늙음, 죽음의 과정을 공부하라는 사인으로 들린다.


그 사인 덕분에 나는 기도를 가장 우선순위로 두고 생활하고 있다. 어떤 일이 와도 내가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또 매번 남일이라고 미뤄뒀던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 자식 된 도리로서 어떤 행동 자세를 준비해야 하는지. 나 또한 죽음이 다가온다면 내가 키우는 아이에게 어떤 걸 남겨둬야 하는지 까지 확장돼 더 세세하게 공부하게 된다.



어린 시절, 매번 부모님께 덕 본 것은 까맣게 잊고 내게 불편했던 점만을 들춰내곤 했다. 어쩔 땐 부모님의 버거운 성격이 나의 족쇄처럼 부끄럽게 여긴 적도 있었다. 매번 관념으로 부모님을 보다가도 죽음이라는 경계를 생각하면 내 아버지로, 내 어머니로만 인식되던 틀이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그냥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매번 다른 관점으로 아픔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나저러나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사인, 그 사인은 사람을 존재로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어찌 보면 힘이 빠지는 허무한 과정이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공부의 기회를 잘 잡아 뿌리 깊은 공부를 잘해볼 생각이다. 그 안에서 또 새로운 앎이 드러날 것이다.









비올라팬지가 죽어가면서 남긴 씨앗이 발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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