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가드닝을 하다가 베란다 가드닝으로 이사를 했다.
처음에는 동향인 데다 베란다가 너무 작다고 생각하고 아예 생각조차도 안 했다.
그러다가 관리가 너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여유가 있을 때야 화초들의 시중들 수 있었다. 그런 할 일이라도 충분히 즐거웠고 기꺼이 엉덩이가 들썩였다. 그러다 바빠진 틈을 타서 베란다로 옮겼는데 오히려 예전 보다 모든 면에서 수월하고 편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덕분에 사람이 틀 하나 바꾼다는 게 1년이나 걸린다는 걸 자각하게 됐고 틀 하나 바꾼 덕에 내가 쓸데없이 갖고 있던 고집도 알게 되고 식물 때문이라는 변명도 무지함에서 나온다는 것도 알게 됐다.
처음에는 날벌레 때문이었다. 뿌리파리라고 하는 해충은 다른 해충들과 다르게 내 안에 성질을 건드리는 약 오르는 벌레다. 다른 진딧물이나 응애도 싫지만 뿌리파리는 다른 화분으로도 공격적으로 옮겨 다니기 때문에 멀쩡한 애들도 갑자기 영양소를 다 뺏겨서 시들 거리게 된다.
두 번째는 앞선 글에서 처럼 내게 화분을 하나씩 관리할 시간이 부족해서였다.
결국 마음을 먹고 앞 베란다에 있던 짐을 다 빼고 물청소를 해주고 말린 후 식물들 대 이동이 시작됐다. 눈으로 보면 별것 아니지만 막상 바닥에 늘여보니 어찌나 많은지 나 스스로도 놀랬다. 이사 갈 때 짐을 빼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나란 존재가 얼마나 많이 깔고 들여놓고 사는지 자각하게 된다.
식물들도 서로 층이 달라 서로 존재조차 몰랐을 텐데 그날은 저마다 같은 높이에 늘어져 서로가 있음을 확인했다. 짐은 많은데 공간은 부족해서 큰 위치만 정하고 일주일간 가장 적정한 위치를 끼웠다 뺏다 정리를 했다. 이 시간도 한꺼번에 몰아서 할 시간이 부족해서 꼭 해야 할 일을 우선 다 해놓고 쉬는 시간마다 작업을 했다. 그러니 마치 이사 가는 집 마냥 어수선한 일주일을 감당해야 했다. 자잘한 화초들이 자리 잡고 초록이들도 사진에는 못 담았지만 적절한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됐다.
그 과정이 참 더디지만 테트리스하듯이 착착 맞아떨어져 적당한 위치를 잡았을 때 희열이 있었다.
그때마다 베란다 가드닝을 하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충 잡는 것도 잘한 것 중 하나다. 그동안 약품처리를 해서 금방 잡을 수 있는 것도 실내이다 보니 환기가 쉽지 않아 바로바로 잡지 못해 더 번지기도 했다. 이번에 옮기자마자 바로 독한 약재로 한바탕 물을 뿌려주었다. 찔끔씩 눈에 띄었던 작은 벌레들도 바로 처리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실내보다 5~10도 정도 더 춥기 때문에 해충이 살기 적정한 온도가 아니고 환기를 24시간 해줄 수 있으니 남아있는 애들도 그다지 살만한 환경이 안 됐다. 볕이 모자라 식물등의 도움을 받지만 베란다에는 콘센트가 없어서 저녁에 해 지기 전까지만 방에서 연결한 연장선을 쓴다. 오히려 그렇게 하니 식물들도 좀 쉴 시간을 주게 돼서 좋았다. 특히 꽃들은 어둠이 필요한 애들도 많은데 늦은 작업이 많은 나는 식물들을 그동안 혹사시킨 건지도 몰랐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호수로 연결해 물 주기 일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흙 정리도 바로 한 번에 정리할 수 있으니 좋았다.
이렇게 장점이 많았는데 나는 그 틀을 못 깨서 계속 힘든 방법을 최선으로 고집하고 있었다.
동향은 이른 아침부터 해가 쨍쨍 들어선다. 그때마다 우리 집 식물들은 모두가 원 없이 광합성을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빛을 흡수하는 것 같이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동향의 햇빛도 꽤나 맛이 있다는 걸 다시 알게 됐다.
작은 정원이 베란다로 나가자 여유가 생긴 자리에 알맞은 가구가 들어가게 됐다.
그렇게 저마다 꼭 맞는 위치로 있을 수 있게 됐다.
또 한 번 내 일상에 작은 틀을 바꿔서 더 나은 모습으로 변신하길 기대하게 된다.
꼭 정원의 일이 아니더라도 작은 부분일지라도 그게 나에게 긍정적으로 시너지를 준다면 그게 뭐든 시도해보고 싶다. 틈틈이 내가 이런 틀 안에 있는지 벽을 한 번씩 두드려봐야겠다.
벽이 아니라 문이 열릴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