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내 마음밭에 새로운 화초를 들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나름대로 땅을 고르고 최대한 공간을 넓혀 화초들의 자리를 잡아본다. 우린 대부분 우리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착각하지만 매년마다 잊지 않고 우리를 쇄신하려 애쓴다. 그 동기는 아주 깊은 나에 대한 사랑이다. 나의 가능성, 우리의 가능성을 우리 스스로는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낭비하려고 습관적으로 플래너를 사고 옷을 사고 자신을 단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기에 변화를 주고 싶고 성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자신에 대한 관점을 잃어버리지 않고 쭉 이어가면 좋겠지만 처음 잡았던 나를 위한 목표, 내게 길들여졌으면 하는 좋은 습관도 4월만 돼도 점점 끈이 떨어져 버린다. 찬바람이 불자 조금 버텼던 새싹도 시들 거리는 것 같다.
매일 아침 한 바퀴 걷다 오곤 하는데 그때마다 점점 안 보였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봄이 오자 마음 밭에 수많은 야생초들이 싹을 올린다. 이미 목질화가 돼 죽은 게 아닌가 싶은 나무들도 여린 잎을 보인다. 초봄에 시에서 나와 모든 잡초들을 싹 민적이 있었다. 잡초들을 자를 땐 섬세하게 가위질하는 게 아니라서 자른 자국이 보기 미울 때가 있다. 그렇지만 야생초들은 꿋꿋했다. 어제 싹을 올린다 싶어 돌아서면 어느새 오랫동안 가꾼 것 마냥 그 자리를 턱 하니 잡고 있다. 야생초(잡초)를 뽑아본 적이 있다면 잡초의 뿌리가 얼마나 질기고 생명력이 있는지 알게 된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나의 눈에는 이미 그 야생초마저 아름답게 보고 정이 들어버린다는 것이다. 야생초는 많이 보이고 자주 보이면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란 걸 안다. 그래서인지 면적도 넓고 아무리 좁은 곳도 들어찬다. 도로 옆 인적이 드문 인도를 건너다 포장이 매끄럽지 않은 길에도 야무지게 자리 잡았다. 야생초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싱그럽다. 그러다 꽃이라도 피워져 있다면 그 모습이 너무나 소박해 안쓰럽기까지 하다. 무심히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에 깔리지 않았으면 하는 응원까지 하게 된다.
봄이라 그런 것이다. 봄에 내가 심은 화초만 자라는 게 아니라서 그런 것이다. 내 마음밭에 날아온 수많은 야생초의 꽃씨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리고 내가 이미 예전에 심어놨다가 죽은 줄 알았던 어떤 일도 오늘에서야 삐죽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나의 게으름도 시선을 놓쳐 우선순위에서 자꾸 미뤄지는 것도 시선을 흔드는 야생초들 때문이다. 그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때론 삶이라는 게 원치 않았던 부분에서 미친 듯이 웃자라 우거지게 자라나 있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물을 주지 않았다고 믿었지만 꿋꿋이 자라나 자리 잡고 있는 일상의 아픔들도 내가 나아감에 어렵게 하는 영역이다.
또 새로운 손님들에 눈을 빼앗기고 관심을 주겠지만 이제 첫봄의 손님들을 대충 다 봤으니 나도 주인답게 마음을 들여다볼 것이다. 나는 안다. 주인이 누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