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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지만 들뜨지 않게

by 미니작업실

언론에서는 온통 시끄럽고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기사들로 도배가 돼있다. 또 불난리로 다 같이 놀라 같이 아픔을 나눠야 하는 일들도 올라와 완전히 외면할 수도 없는 요즘이다.

이렇게 혼란할 때도 자연은, 일상은 굴러간다.

때로는 너무도 냉정해 보일 때도 있지만 또 그 계절의 변화에 맞춰 보여주는 무심한 변화에 어쩔 수 없이 눈이 끌리고 마음이 끌려버린다. 그렇게 복잡하고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기사들로부터 잠시 관심을 돌려 다시 회복하는 시간을 갖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일상은 참으로 중립적이다. 그런 중립적인 일상을 바라보며 다시금 마음을 정리하게 된다.

새로 맞이한 2025년의 봄은 설레지만 너무 들뜨지 않게 보내자고 마음먹는다.

이번 주말에도 꽃시장에 갔다. 지난번과 다른 곳이었지만 또 다른 감동으로 꽃들이 위로해 주었다.

저렇게 성실하게 자기 역할하며 잘 커준 화초들이 너무 대견했다. 또 사람들이 해줄 수 없는 맑고 청량한 위로가 있다. 그 위로는 눈에 구체적으로 보이지는 않아도 모두들 눈길을 끌게 했다. 저절로 시선이 가고 저절로 꽃을 보고 미소를 짓게 했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도 할아버지들도 조용히 화초들을 들고 계산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보기 좋았다. 그렇지만 또 그 설렘에 너무 들떠 그저 그 꽃만 즐기기에는 저쪽에 타버린 산들의 시름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꽃과 나무를 사랑하고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 눈이 저렇게나 선하다면 분명 그 산들도 회복이 될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될 것이다. 예전에 태안 앞바다에 기름이 유출돼 희망이 없다고 모두들 한소리씩 했지만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속도로 회복시켜 모두들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산림 역사를 보게 된 적 있다. 순전히 우리나라에는 왜 이렇게 같은 종류의 나무가 많을까 궁금해서 본 정보였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은 계획적으로 다시 심어서 지금의 산의 모습이 된 것이다.

일제 수탈부터 시작해 한국전쟁을 거쳐 아무것도 없었던 산에 우리 기후에 잘 맞는 수종으로 골라 우리가 흔히 보는 비슷한 우리나라의 숲으로 만들었다는 얘기였다. 내가 본 산은 그저 자연 그 자체 같았고 그건 사람손이 아니라 신의 손만으로 탄생한 작품 같다. 그렇지만 어려웠던 시절 다시 다 회복시키고 심지어 아름답게 가꾸기까지 해서 관광지가 되기까지 사람들이 노력도 있었다는 것은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다.

그저 시켜서 하는 마음이라고 대충 대충 심었다면 저 나무들이 저렇게나 많이 심을수 있었을까? 그리고 저렇게 건강하게 올곧게 자라게 할수 있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손끝 자체가 야무지지만 선한 사람들이 한명 한명 진심으로 정성으로 심어서 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미 잿더미가 돼버린 곳에 자꾸 낙담을 하고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공감하고 같이 힘들어할 수는 있지만 먼저 도울 게 없는지 살피고 그저 묵묵히 긍정적으로 바라봐주고 응원해 주는 게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어딜 가나 무슨 일이 닥치면 그저 울분만 쏟아내고 나라 자체를 비방하고 욕하기 바쁜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 명, 한 명 평범하지만 선한 사람들이 일궈온 나라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조용히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꽃들처럼 빨리 회복하라고 일부러 더 덤덤히 섬섬히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 잘못은 했지만 나라 전체를 비난하면 서로 힘만 빠질 뿐인 것이다.

언젠가 너무 빨리 회복해 버려 참 대단한 민족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너무나 애쓰고 고군분투하신 분들도 언젠가 이 꽃들의 위로가 들리고 웃음이 보일만큼 일상을 회복하길 진심으로 기도하는 마음이다.

일상이 이렇게나 담담하게 흐르는 것처럼.

절대 안 올 거라는 봄이 냉정하게 담담하게 도착해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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