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도착한 봄을 맞이해 꽃구경하면서 흠뻑 마음이 들떴다. 하루가 다르게 점점 단출해지는 가벼운 옷차림만큼이나 마음이 가벼웠다. 너무 들떴나? 너무 덜렁거리는 마음이 컸었나? 봄을 즐기는 마음이 무겁게 산불소식이 들렸다. 금방 잡힐 것 같아 마음을 너무 놓았을까? 너무 내 생활에만 집중을 했을까? 산불은 점점 번지고 있고 덕분에 봄을 설렘으로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다. 그 울창했던 산들도 봄을 기다리며 싹도 틔우고 새들도 다른 작은 동물들도 보금자리를 다듬었을 것이다. 키 큰 나무들은 또 어떨까? 키가 작은 다른 봄꽃들도 화마로 시름하고 있을 것이다. 산불은 좀 극단적으로 안 좋은 재앙이지만 일상이 일상으로 굴러가는 것이 얼마나 행운이고 귀하고 선물 같은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다. 지난 주말 꽃시장에 다녀왔다.
내가 찾았던 꽃들도 있어서 냉큼 집어왔다. 봄에는 꽃이 다양하고 나오는 양도 방대하다. 그래서인지 꽃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할 때이다. 나만 그런가 했는데 화원에 온 사람들도 하나둘씩 꽃모종들을 들고 집으로 가셨다. 나도 작은 화초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한참만에 귀한 새손님이라 제일 눈이 많이 가는 곳에 자리 잡게 해 줬다. 덕분에 다른 화초들도 한 번씩 더 손질해 주고 이미 시들해서 해충에 다 잡아 먹힌 애들은 과감하게 정리를 했다. 처음 들였던 동양란도 꽃이 한차례 다 지다가 다시 꽃망울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제 막 1년을 돌고 2년 차에 들어선 식집사는 다시 기회를 주는 새 봄이 고맙고 반갑다. 이렇게 예쁘게 가꿔준 베테랑 꽃사장님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꽃시장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해지고 좋은 기운을 덤으로 받는다. 이렇게 주말에 꽃시장을 들러 구경했던 일상은 뉴스에서 떠드는 안타까운 소식과 섞여 너무 단 맛이 느껴지는 느낌이다. 이 단 맛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할 만큼.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 같은 불길을 잡느라 고생할 소방대원들에게 마음이 간다. 일상이 아니라 재난의 현실을 맞이한 사람들에게도 조용히 마음을 내본다. 모두가 너무 힘들이지 않게 산불을 잠재울 시원한 비가 한번 와줬으면 좋겠다.
들뜨고 따뜻한 봄을 나도 기다렸지만 잠시 좀 더 춥고 질퍽한 땅쯤은 참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미 타버린 곳도 분명히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자리 잡길 기도하고 편안하고 느긋한 일상이 모두에게 그러한 일상이 되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