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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의 성장통

by 미니작업실

집요하게 달라붙어있던 안 좋은 취미가 있었다.

그 취미는 다른 것으로 돌려보려 의지를 낼수록 더 강력하게 집착을 부렸다.

참을수록 더 갈증이 났고 그래서 내버려 두고 그냥 그 취미를 이어왔었다.

재밌는 것은 그게 10여 년간 하지 않았던 취미인데 호기심이 발동하고 그 이후 오래 해왔던 것처럼 습관이 생겨버렸다. 다른 일은 제쳐두고 쫓았다.

남에게 특별히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느꼈고 거부감이 많았다.

근데 그건 내가 보기 싫은 것을 보지 않기 위해 열심히 있는 힘을 다해 도망치고 있는 거였다.



그러다 어제 그 민낯을 발견했다.


사람들과 같이 있어도 공허하고 외로운 느낌이 너무 컸던 것이다.

공허하고 외로운 허기짐이 마치 내가 너무 못났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괴로웠다.

이건 이미 알고 있다고 느꼈지만 성숙한 나랑 다르게 저 깊숙이 숨겨둔 덜 자란 아이는 계속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을 부끄럽다고 말하기 조차 힘들 만큼 말이다.

수치심이었다.


근데 이 가슴 아픈 감정을 자각하게 된 건 나로부터 알게 된 게 아니었다.

딸의 성장기를 통해 비추어 보였다. 친구관계에서 보이는 미묘한 신경전, 그게 잘 삼켜지지 않고 내가 견딜 수가 없었는데 그 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아픔이었다.


어른이 됐을 때는 삶을 통해 배우게 돼서 무뎌진 흉터가 있지만 어린아이들이 부리는 미성숙하고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다시 한번 대면하게 된 것이다.

순수한 만큼 감정의 농도가 세다.


운다고 해도 어른들은 누가 볼까 혹은 나 스스로 부끄러워 숨어서 운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은 감정 그대로 표현한다. 시시비비를 가릴 의도도 없이 그저 감정을 토해낸다.

어린아이의 울음만큼 모든 사람의 집중을 시키는 건 잘 없으니까.



정말 보기 싫었던 악 취미를 돌려보니 내가 꼭 해결했어야 할 감정도 발견하게 되었다.

다행히 꽃나무만 키운 게 아니라 나도 키운 것 같다.

그렇게 내가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불안정한 과거를 열심히 봐주었다. 한바탕 그 공허함을 꺼내놓고 나자 앞서 말한 악 취미가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직접 봐도 더 이상 끌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루했다.

밤새 남아있던 감정을 지켜보다가 깊이 자지도 못했다.

그런데 억지로 잠을 청했던 예전보다 정신이 명료했다.


성장통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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