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방치해 둔 그림 일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붙잡으면 잘 놓아지지가 않아질까 봐 보지도 않았는데 이제야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마음은 참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마음이라 반가웠다.
글쓰기도 알겠고
가드닝도 알겠는데
그리기가 안되었다.
2년 전 문신같이 늘 끼고 다녔던 그림 관련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가 와서 손을 많이 필요로 했다. 그렇게 손과 발 역할을 하면서 점점 아이와 나는 성장했고 시간이 좀 지나 내 역할을 조금씩 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엄마로서의 나는 충분히 바빴지만 그것도 하면 할수록 좀 더 효율적으로 바뀌면서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문득 자신이 없어지기도 했다. 지금 와서 경쟁력이 있겠나 하는 볼맨소리가 올라왔다.
일을 생각하면 자유롭지 않은 내 상태가 답답했다. 할 수 없는 상황과 하고 싶은 마음이 팽팽하면 행동하기 어려워진다. 다른 데에 집중하다가도 그림만 생각하면 손도 대기 싫은 마음이었다.
이렇게 긴 시간이 늘어져서 바닥이 눅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물속에 잠긴 듯 생각에 잠겨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의로 잠수를 한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생각하느라 에너지가 소진됐음을 알았다. 그럴수록 나는 발버둥을 치기는커녕 힘을 빼고 잠겼다. 내가 수심 밑바닥을 매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여유가 가시처럼 느껴져 부담스러웠는지 부정적인 취미나 관심을 기웃거렸다. 하고 싶은 것을 확 못하니 다른 걸로 몰두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엉뚱한 짓을 하는 나를 발견하자 바닥에 닿았으면 짚고 올라가야 하는데 나는 그 바닥을 파헤쳐 진흙탕을 만들고 있음을 자각했다.
오늘 문득 생각이 쉬어졌다. 복잡한 계산을 그만하고 싶고 엉뚱한 행동을 하며 시야를 흐리는 나를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제 그림을 다시 그려봐야겠다.
그리고 그림 그리기를 가르쳐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