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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절기

by 미니작업실

화초들을 화면에 담을 때, 좀 신비한 법칙이 있다.

사진을 찍을 때는 계획되지 않고 저절로 손이 가서 찍는 법칙과 찍힌 꽃은 그때가 정점이라는 것이다.

내가 본 시선이 항상 모든 걸 기억할 거라 생각하지만 눈 안에 담고 싶고 각인시키고 싶은 지점은 정말 찰나와 같다. 모든 꽃들은 다 봄꽃이라 퉁치지만 3월에 예쁜 꽃, 4월이 돼야 더 예쁜 꽃 등등 미세하게 꽃과 잎새가 더 예쁜 시절이 있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지나쳐 버리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반복적으로 주기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시절 인연이라기보다는 '인연의 절기를 맞이했다.'라고 받아들이는 게 나은 것 같다. 내 성격이 그렇듯 내 일상이 그렇듯 어떤 날은 상태가 좀 좋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좀 기분이 처진다던가 기운이 없다던가 해서 항상성을 잃어버린다.


조금 가까웠던 지인이 있었다. 항상 그 지인만큼은 사람 참 괜찮다고 순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이름 붙이고 안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최근 만나면서 방심하다 필요이상의 날카로움에 베이고 말았다. 정황상 아무리 뒤져봐도 뾰족하게 대할 만큼 둘 사이에서 일어난 불화가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만난 적도 드물었으니.


어린아이시절을 지나 일정 시간 이상 커버리면 1월에 태어난 사람과 12월에 태어난 사람의 차이가 무색해진다. 그렇지만 관계가 순환하며 성장하고 유지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1~2월생, 7~8월생, 12월생이 조금씩 다른 성장점을 보이듯 관계도 그런 것이다. 서로 언제부터 관계가 시작됐는지 각자의 마음만이 알 길이다. 화초마저 얘는 참 잘 자란다 싶어도 그게 늘 그럴 수 없듯이 그 사람이 보는 내가 일정하지 않을 것이고 나도 그 사람이 예전과 같지 않다면 절기 탓일 것이다. 그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이유가 없다.


처음에는 좋은 사람을 또 잃었다는 속상함이 올라왔다. 그러다 내가 혹은 그 사람이 뭘 잘못했나? 한참을 곱씹어 보았다. 오늘 문득 지난주에는 사진 찍고 예뻐했던 새 화초들의 미운 모습이 드러나 보였고 옮긴 지 얼마 안 된 토분이 곰팡이로 뒤덮여 있었을 때(토분의 특성이기도 하지만)도 감출 수 없는 내 거부감과 소름은 사람과의 인연과 다르지 않다.


모든 관계에 이만하면 되었다는 게 없고 그만큼 신중해야 하고 늘 겸손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아직도 베인 곳은 얼얼하지만 곰팡이 토분도 새 화분으로 갈고 화초들을 관리하면서 또 마음을 다잡아 봐야겠다. 문이 닫히면 새로운 인연이 들어온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5월의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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