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 자리, 난 자리

by 미니작업실

최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지인들을 여럿 만나게 되었다.



한 가족은 엄마를 잃었고 한 사람은 아빠를 다소 일찍 여의게 되었다. 똑같이 그 시간에 있었고 같이 슬펐고 위로를 해주었지만 그다음의 여정이 얼마만큼의 허무함인지 짐작할 수는 없었다. 그 허무함이 그 가족의 모습을 어떻게 바꾸고 한 사람의 건강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말이다.

허망한 마음은 그 빈자리를 채우듯 새로운 누군가를 계속 찾는다고 했다. 그게 좀 오래가면 좋으련만 그것도 잘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난 자리의 존재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 것이다.

슬픔을 꾹꾹 숨겨뒀던 지인도 짓눌린 책임감에 무의식으로 지금껏 심장의 부정맥과 기분을 좋게 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는 식성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라도 자신을 위로할 수 있다면 그런 것도 좋았다. 당장 숨쉬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그 정도의 심호흡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의 엄마, 아빠의 자리가 어떤가?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엄마의 숨은 손길이 필요한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대체로 남겨진 사람들의 방황을 지켜봐 줘야 했다. 그 지켜봐 주는 사람들도 나이만 먹었지 다 처음 겪어보는 이별의 고통이었다. 다만 그 고통이 지켜보기만 해도 큰 지진과 해일이 지나간 듯 여파가 있었다. 일상에 크게 작용할 때도 있고 잊은 줄 알았는데 발이 늪에 빠져있는 걸 발견했다. 자신이 우울에 빠져있다는 걸 늘 발견해야 했다. 스스로의 자각이 없으면 누구도 짐작 못할 만큼 멀쩡했고 은밀하고 치밀하게 삶을 허무하게 만들어버렸다.


"나만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따라갈까?"

"오늘은 좀 괜찮네... 기분 좋아도 되나?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되나?"

"저렇게 허무하게 아프다가 돌아가시는 게 정말 끝인 걸까?"

"저렇게 죽는 줄 알았다면 좀 즐기다 가시라고 할걸~"

...


죽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남겨진 사람들과 떠나간 사람과 겪어냈던 '사랑'이 남았다.

그 사랑에는 분명히 여러 가지 감정의 흔적이 남는다.

그 사람을 위한 온전한 사랑인지, 지나간 삶에 대한 안타까움 자체인지, 목숨줄의 허망함인지, 남들은 공감 못할 정도로 힘든 가족이라 그저 이 인연이 지나갔으면 하는 의무감인지 등등 수많은 형태로 말이다.




겁이 많고 준비성이 없는 나지만 주변사람들의 허망한 죽음을 지켜보면 많은 질문을 하게 된다.



나의 난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살아 있을 때, 나와 그 사람과 하는 사랑의 형태가 질식할 것 같은 사랑이라면 억압과 자기만족에 가까워서 그가 떠난 자리에 시원한 숨이 들어찰 것이다. 일상이 회복할 때도 시야가 점차 열리듯 가벼워질 것이다. 가벼워진 만큼 죄책감을 또 도돌이표처럼 느끼는 선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마저도 후유증이다.

책임져야 하는 의무감에 오랜 시간 간호를 해왔던 사람들, 그중에서도 유독 억울한 자리를 맡아왔던 사람들도 긴 숨을 쉬는 시간이 될 것이다. 떠난 사람과의 이별을 위해 자신의 삶을 저당 잡혔던 사람들은 그 난 자리에 일상의 회복과 같은 다소 투박한 의무감이 들어찰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어도 괜찮다.


의도가 허무 해지지 않으려면, 애정이 집착으로 변하지 않으려면, 책임감에 사랑이 너무 결여되지 않으려면 삶의 많은 부분을 부정해야 한다. 그런 부정함에는 삶의 생명력이 없다. 그저 아이로 남고 싶은 존재밖에 되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살면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못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그 길을 내야 하는 것이다.


떠나간 사람의 난 자리에 남겨진 사람과의 사랑이 남는다.


그 사랑이 아픔이 될 것을 알아도. 허무함이 될 줄 알아도.

그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흔적으로 남겨질지.

서로가, 우리가, 내가 답을 만들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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