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내 일은 아니었다. 내가 발생시킨 일도 아니고 내가 해결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파도가 거세져서 내가 지내는 일상에 자꾸 넘실거렸다.
넘실거려도 들어오는 물만 바가지로 퍼서 내버리고 또 일상을 달렸다. 그 일상에 전념하는 듯이 보이게 연기했다. 서로 파도를 만드는 주 세력이 서로가 맞다고 주장하고 있었고 그럴수록 관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더 젊었던 시절은 모든 일이 내가 책임질 일 같아서 모든 일에 앞장서려 하고 쓸데없이 총대를 메었다. 편을 들든 중립에 서서 외치든 총대를 메면 그 순간은 나의 도덕적인 우월감, 정의감을 인정받는 것 같아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총대를 매기까지 나를 이끌었던 사람들 마저도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패기는 부끄러운 흑역사가 되곤 했다. 내가 중립을 외치며 서로를 이해시키기까지의 공은 쓸모 없어지기를 반복했다.
모두의 편이라고 해도 회색분자 취급을 했고 그 누구의 편도 아니라고 하니 정의감 없고 개념 없이 사는 취급을 당했다. 그리고 또 누구의 편이라고 앞에 있을 때만 각자의 편에서 맞장구를 쳐준다고 해도 결국은 모래성 게임으로 바뀌었다. 네 편도 내편도 아닌 사회생활은 그 중립을 지키는 게 어찌나 어려운지 몰랐다.
혹 독자들 중에서는 그 정도는 좀 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선배님이 계신다면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낸다.
그런데 나는 그 시절의 나와 이미 알만큼 아는 나 사이에서 항상 긴장하면서 설득한다.
이번 일도 그랬다.
정확히 내 일이 아니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감정의 이기심이 설키니 파도가 거센 것은 맞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알아서 파도는 잦아들었고 그 여운으로 이번 일을 돌아보고 있었다.
지난 주말 물놀이장을 찾았다. 파도풀장을 처음으로 체험하게 됐다.
사람들이 많아서 사람 반, 물 반이었다. 파도가 시작하는 곳에서의 사람들은 오히려 몸의 힘을 뺀 체 파도의 흐름을 타고 있었다. 나는 아직 키가 크지 않은 아이 덕분에 파도가 끝나는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파도타기 체험을 했다.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오히려 파도가 끝으로 갈수록 오히려 더 몸을 가누기가 어렵고 이리저리 사람에게 더 치이게 된다. 파도가 시작되는 곳에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다만 그 물의 중심에 있기에 밖으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고 또 발이 지면에 닿지 않아 그 공포심을 의지로 이겨내야 한다.
수심이 얕을수록 파도의 힘을 온전히 받게 되었다. 또 이리저리 영향을 많이 받아 굴러다니기 쉽다. 대신 지면이 바로 느껴지고 언제든 바다로부터 떨어질 수 있다.
내가 파도를 일으키든 내가 아닌 다른 파도의 영향을 받든 파도타기처럼 생각해야겠다.
때론 중심으로 갔다가 여력이 된다면 점차 수면 밖으로 나오는 것, 그 계산을 잘 해낼 만큼 민첩한 마음근육이 있다면 좋겠다. 그때는 이 글보다 좀 더 깊이 있는 글을 쓰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