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으스러질 때

by 미니작업실

얼마 전 50대가 된 지인을 만나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지인에게는 반복적으로 비슷한 유형으로 힘든 시련이 생겼는데 보다 젊은 나이에는 그 사건이 그저 하나로만 보였던 것 같다. 옆에서는 보이지만 당사자에게 형태가 보이긴 어려우니 말이다. 그러다 이런저런 일이 벌어지고 삶이 으스러진다는 경험을 하고 바닥 밑에 바닥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 흔들림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돌아보는 마음이 발견됐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처음으로 삶 전체를 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쯤 되면 눈을 떠도 감아도 잠들기 전까지 그 일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이 나이 들어 뭔가에 의지하려 하고 보이지 않는 힘을 믿고 싶어 질까? 잘 풀려간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 일이 특별히 괴롭고 힘들기 때문이다.

잊히지 않고 자꾸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그 문제의 책임을 떠맡을 수밖에 없게 상황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삶이 으스러질 때가 있다.


내 노력으로 이 정도면 다 되었다고 생각할 때쯤 삶은 다양한 방식으로 도전을 준다.

도전 정도로 끝나면 좋겠지만 삶이 '꼬인다.'라는 느낌, 삶이 '으스러진다.'라는 느낌이 들 때 가슴깊이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족일로 누군가가 크게 아프다던지, 혹은 오래 아프다던지, 직장에서의 문제, 인간관계에서의 문제 등등이 있다. 그렇게 나를 둘러싼 환경이 먼저 움직일 때 저절로 멀미가 올라온다.


10대 때의 멀미라면 그 나이답게 연약한 자아상으로 인한 것일 것이다.

2~30대의 멀미라면 잘 다듬어진 자아상과 그렇지 않은 세상과의 마찰일 것이다.

40대가 되니 지난 시절의 마찰로 너덜 해진 나 자신이 선명히 보인다. 또 생각보다 연약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주변인이 보인다.

40대인 내가 보는 50대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오히려 20대의 치기 어린 열정으로 무너지거나 어설픔으로 무너진 경우도 안타깝지만 50대에 무너지는 사람을 보면 다른 종류의 막막함을 느끼곤 한다.

6, 70대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나이 든 사람으로만 자신을 살아내는 사람이 있고(물론 그마저도 안 되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그때서야 주변의 껍데기가 벗겨지고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는 사람도 있다.


나 자신도 대체로 안심하다가 가끔 출렁다리를 걷는 심정일 때가 많은데 더 큰 무게로 주변에서 책임져달라고 다가올 때면 외면하고 싶은 마음과 그저 내 문제에만 집중하고 싶은 생각에 매혹당한다. 그냥 어린아이처럼 내 문제만 파고들고 싶다. 그러기엔 살아오며 만들어진 파이에 몸집이 커지고 연결망도 많아졌다.

도전하고 달리면서 연결된 누군가와의 연결망이 이 인연이 혹은 악연이 아직도 내게 영향을 줄 만큼 붙어있나 싶을 때가 있다. 다리에 잘못 엉킨 오래된 거미줄을 발견한 것처럼 놀랄 때가 있다. 사람이든, 사건이든 추억이든 말이다.


사람 마음은 잘했던 것을 곱씹지 않는다. 오답노트처럼 잘 풀리지 않았던 문제를 떠올릴 뿐이다.

실수하고 싶지 않은 긴장감이 오히려 현재를 천천히 관찰하는 눈을 가리는 것 같다.


덩치가 큰 문제는 오히려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자잘한 문제, 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들은 발견하기도 그걸 인정하기도 어렵다.

집안이 큰 물건으로 어수 선한 것과 자잘한 물건으로 엉망인 것은 좀 다른 것처럼 말이다.

작은 꼬임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큰 문제까지 풀릴 수 있다.




그렇게 몸에 온전히 힘을 빼면 바닥이 보인다. 혹은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런 바닥지점을 마주하면 그때서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일수록 움츠려들지말고 오히려 당당히 내가 할 수 있는 범주까지 또다시 걸어보면 되는 것이다.

내가 괜히 걸치려 했던 허례허식은 이때 다 내려두자.

짐 대신 보석을 들고 가는 마음은 오히려 든든할 것이다. 가장 소중한 것들을 어깨에 짊어져보자.

가장 가치로운 무엇을 남기고 나머지는 제각각의 주인을 찾을 수 있게 비워버리자.

그렇게 새로운 인연, 새로운 일을 맞이할 준비를 해보자.

조금 늦더라도 누가 자꾸 발목을 잡는 것 같아도 담담하게 해내면 되는 것이다.

시작도 중간도 요란할 것 하나 없이 레이스를 잘 통과해 보는 것이다.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는 언젠가 아물고 언젠가 실마리를 보일 것이다.

그때 내가 애썼던 나의 시간을, 그 열정에 그저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는 것, 그 안목을 갖기까지 그저 걸어보는 것이다.


끝까지 완주하면 될 것이다. 누구에게 증명할 것 없이 내가 책임져야 할 그 일에 완주한다면 그보다 더 눈부실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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