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현재 입시를 교육이라 착각하며, 아이들을 불필요한 고통 속에 방치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은 때로는 고통스러울 수 있다. 특히 청소년기 이후의 교육에는 분명 질적인 성장의 과정을 의식적으로 통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고통이 수반되는 경우가 있고, 그 고통이란 어느 문제에 몰두함으로써 막히는 부분에서 겪어야 할 스트레스다. 그 고통의 과정을 거치고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고통보다 큰 환희를 느낄 수 있다. 학습자의 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지는 대로 또 다른 모습의 고통과 환희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오늘날의 교육과정에서 겪는 고통은 그런 고통이 아니다. 공부를 하는데도 오르지 않는 등수. 학원에 가기 싫은데 가야 하는 고통. 학원 뺑뺑이를 돌다가 집에 와서 느끼는 탈진 수준의 피곤함. 조금이라도 재미를 찾기 위해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다가 늦게 잔 결과로 찾아온 졸린 아침. 그래도 가야 해서 도착한 학교에서 발견한 또 다른 지친 아이들. 그것을 보는 스트레스. 그 쳇바퀴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자각에서 오는 패배감. 다른 길은 보여주지도 보려고 하지도 않는 벽처럼 느껴지는 부모를 보는 고통. 거기에 더해 그 고통과는 상관없이 잘 돌아가는 듯 보이는 세상. 그 괴리에서 오는 고통까지 아이들은 느낀다.
그 고통 속에서 어떤 아이들은 자살을 한다.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더라도, 많은 아이들은 그저 버티는 식으로 산다. 학생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대표 표본을 통한 여러 조사들에서도 이미 잘 밝혀졌다. 일례로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국회의원 유기홍이 함께 의뢰하여 2022년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등학생 25.9%가 학업 성적으로 인한 불안과 우울감으로 자해 또는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매해 150명 내외의 학령기 아동 및 청소년이 자살을 한다. 학업과 성적 때문에 불안과 우울을 경험한 경우가 47.3%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사회적 고통이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경쟁교육의 현실에 너무 익숙해져서 큰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한 현실에 암담함을 느낀 교육자들이 2011년에 내놓은 책의 제목 『교육 불가능의 시대』가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많은 의식 있는 이들이 이런 심대한 사회적 고통을 지적하고 있는데,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재의 교육방식은 교육적 효과도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