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12.3
12.0
“이곳은 거의 폐허나 다름없네요. 물론 역사가 담긴 구시가지라고 불러도 되겠지만 제 눈에는 그냥 폐허로 보입니다. 안전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이런 폐허 속에서도 사람들은 즐거움을 찾아 밤새 헤매고 다니다니 참 인간은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케이는 주클럽의 위층에 있는 호텔 방에서 밖을 내다보면서 중얼거렸다. “특히 이 지역은 중독자들의 거주지와 유흥가가 있는 곳이라 더욱 그렇게 보일 겁니다. 제3 구역은 지역별로 차이가 크지요.” 제니스는 이수현경감을 위해 가지고 온 저녁 식사를 케이의 옆에서 테이블에 차리면서 대답했다.
“자, 저녁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우리가 사는 모습만 구식이 아니라 사는 방식도 구식이랍니다. 호텔 방값과 룸 서비스 비용을 여기에 지불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니스는 계산서가 담긴 종이를 이수현 경감의 앞으로 내밀었다. 이수현 경감은 자신의 스케줄러에 계산서를 스캔했다. “결제되었습니다.” 이수현 경감이 제니스를 보고 말했다. 제니스는 자신의 손목에 있는 스케줄러를 쳐다보면서 결제를 확인했다. “팁을 이렇게 많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더 필요하신 것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제니스가 나가려고 움직이자 이수현 경감은 그를 불렀다. “잠시만요. 바쁘신 것을 알지만 제가 저녁을 먹을 동안 잠시 저와 이야기를 나눠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팁을 많이 주신 이유가 있었군요. 알겠습니다. 어려운 것도 아니니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제니스는 이수현 경감이 앉아 있는 작은 간이 테이블의 옆쪽의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저는 이만 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소비한 에너지를 충전하려면 평소보다 시간이 더 필요하니까요. 그럼.” 케이는 입구 쪽에 있는 충전대에서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전보다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바에 있던 사람들 말고도 거리에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가요? 저는 클럽 안에서 바쁘게 일하다 보니 잘 모르겠는데요. 솔직히 우리 클럽의 고객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요.” “그렇군요. 여기 드나드는 김준호박사에 대해서 말해 주시겠습니까?” 이수현 경감은 제니스의 얼굴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분명히 김준호 박사라는 말을 듣자 제니스의 얼굴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내려고는 하지 않지만 놀라움에 때문인지 잠시 눈이 살짝 커졌다. “그분은 우리 클럽에 몇 번 온 손님입니다. 오늘 그 사람 때문에 여기 방문하신 건가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기 와보고 나서 그 사람이 여기에도 왔을 거란 확신이 들었거든요.” 제니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이수현 경감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에 있는 손님들이 전과는 달라 보였습니다. 술과 마약에 찌들어 있던 그 눈빛이 조금 달라져있었어요.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전과는 다른 눈빛이었습니다. 게다가 케이를 보고 무슨 일을 하고 얼마를 버는지 질문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건 돈을 버는 일에 관심이 있다는 거고 돈을 벌고 싶다는 것은 뭔가 하고 싶다는 것이거든요. 클럽을 전전하는 사람들이 돈을 버는 이유는 술과 마약을 더 많이 하고 싶어서 일 텐데 그 사람들은 중독자들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돈을 더 벌고 싶은 건 술과 마약 또는 이성을 사귀거나 아니면 더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 등등 경감님이 상상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게 다 주어지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1 구역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겁니다.” “거리에서 제 차를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욕망하는 눈빛의 사람들이 김준호박사와 관련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주사장님이 오시면 같이 이야기해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럼 다른 용건이 없으시면 나가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내일모레 주사장을 만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제니스가 나가고 나서 이수현경감은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이영이 주사장의 클럽에서 일하던 직원임을 첫눈에 알아봤던 이수현 경감은 사실 이영 때문에 김준호박사가 주클럽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니스에게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수현경감은 주클럽이 분명히 제3 구역과 김준호박사가 만든 지하도시와 연결고리가 되는 지점이라고 판단했다. 불법적으로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는 제3지대에서 그 중심은 주클럽과 주사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주사장은 노화가 진행되어 죽을 날을 기다리며 병원을 오가는 신세였다. 그렇다면 제니스가 모든 것을 알고 있을게 분명했다. 심지어 이수현경감이 김준호박사의 초대로 지하도시에 다녀온 것도 알고 있을게 분명했다.
이수현 경감은 김준호박사가 만든 지하도시가 물리적인 도시로서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을 채우는 사람으로 의미가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자신과 같이 존재의 의미부터 모든 것이 미리 주어진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의 도시가 김준호박사의 지하도시였다. 이수현 경감은 케이가 충전 중인 것을 보고 다시 방을 나왔다. 만약 가능하다면 제니스가 아니라 다른 직원에게 이영에 대해서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조용한 복도 끝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이수현경감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자신도 모르게 다가가고 있었다. 소리가 나는 방 쪽으로 다가 갈수록 소리는 점점 커지고 뚜렷하게 들렸는데 남자가 호통치듯 말하는 소리였다. “내가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잖아.” 안에서 남자가 호통 치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분명히 주사장의 목소리였다.
12.1
이수현 경감이 방문 앞에 있는 스크린 앞에 서자 안에서 들리던 주사장의 목소리가 조용해졌다. “이수현 경감님? 내일 미팅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너무 빨리 오신 것 같습니다.” “나도 주사장이 오늘은 병원에 있어서 내일로 미팅을 잡은 줄 알았는데요. 그게 아니라 여기 계시면 이 밤에 할 일도 없는데 좀 빨리 만나는 게 어떨까요?” 방안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네, 들어오세요.” 이수현 경감이 반쯤 포기하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주사장이 소파에 앉아서 이수현경감을 향해서 손을 들어 반겼다. “오랜만입니다. 나 같이 다 죽어가는 늙은이에게 무슨 볼일이 있으신 건가요?” 주사장은 전과 같이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지만 이수현 경감이 보기에 얼굴은 검은빛이고 몸은 전보다 훨씬 말라서 노화가 많이 진행되어 보였다. 술과 마약을 하던 사람은 갑자기 죽는다더니 아무리 돈이 많고 불법 적으로 원하는 것은 다 할 수 있는 주사장도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병원에 갔다고 들었는데 일찍 온 건가요?” “병원은 갔죠. 다 죽어가는 내가 병원에 오래 있는다고 살아날 것도 아니고 한 시간이라도 마지막까지 즐기고 싶어서 일찍 나왔습니다.” “방 밖에서 사장님이 소리가 들려서 온 겁니다. 누구랑 싸우고 있는 것 같던데요?” “싸우긴요. 그냥 병원과 의사소통을 한 겁니다. 저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있으실 텐데요. 제가 술에 취하기 전에 먼저 이야기하세요. 저는 요즘 술 몇 방울만 삼켜도 정신을 잃고 헛소리만 떠들거든요. 경감님에게는 특별히 맑은 정신으로 대답해 줄게요.” 주사장은 소파의 등받이에서 갑자기 몸을 일으켜서 이수현경감 쪽으로 얼굴을 바짝 대고 말했다. 그의 입에서는 이미 알코올 냄새가 진하게 퍼져 나오고 있었다. “짧게 묻겠습니다. 사장님은 김준호 박사와 여기서 무슨 일을 한 거죠? 전에 여기서 일하던 이영 씨도 김준호 박사와 같이 다니던데요. 제니스 씨처럼 김준호 박사가 그냥 여기 손님이라고 말하지는 말아 주세요. 진실을 듣고 싶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김준호박사가 하는 일을 알 리가 있나요. 그 사람한테 직접 물어보면 더 잘 알 텐데요. 하지만 경감님이 저에게 물어보시니 제가 아는 대로 알려드리죠. 아, 근데 목이 마르네요.” 주사장은 소파에서 일어나서 물을 찾으려는 듯이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었다. “물이 필요한가요? 제가 가져다줄 테니 다시 앉으세요.” 이수현 경감은 주사장이 아무래도 넘어질 것 같아서 그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그는 몇 발자국 걷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뿐인데도 숨을 몹시 크게 헐떡이고 있었다. 그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니 아무래도 그가 정말 곧 죽을 것 같아 보였다. “다시 병원에 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수현 경감은 주사장을 보면서 물었다. “물이나 가져다주세요. 목이 말라요.” 이수현경감이 물을 가지고 왔을 때 주사장은 소파에 기대어 거의 잠들어 있었다. 이수현 경감이 그의 입에 대고 물을 마실 수 있게 해 주자 주사장은 눈을 뜨고 물을 벌컥 거리면서 마셨다. “이렇게 맛있는 물은 처음 먹어 봅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바쁘신 경감님이 여기 왜 오신 건가요?” “김준호박사가 여기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는 대로 말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이수현 경감은 주사장의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고 느끼면서 손목의 스케쥴러를 갖고 그의 몸을 체크해 봤다.
“경감님이 알고 싶은 거라면 제가 다 알려드려야죠. 그 사람은 여기서 3급 시민들을 새롭게 만들었어요. 나도 오래 살고 싶어서 그 사람을 도와줬는데 나 같은 건 관심도 없었나 봐요.” 주사장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졌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시민들을 새롭게 만들었다면 어떤 교육을 했다는 건가요?” “교육이요? 여기 사는 사람들이 교육을 받아서 뭔가 달라질 사람들인가요? 물론 어떤 유전자 주사를 놔주기도 해서 중독이 줄어드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들었다고요. 내가 봐도 그건 여기 사람들을 고치는 것보다 쉬운 방법이었을 거예요. 여기 인간들은 절대 변하지 않아요. 나도 아버지처럼 알코올에 찌들어서 죽기는 싫어서 온갖 방법을 다 써봤는데 이렇게 되고 말았어요.” “혹시 김준호 박사가 만들었다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볼 수가 있을까요?” “나는 죽고 싶지 않아요.” 주사장은 잠이 들었는지 눈을 감았다. 이수현 경감은 그의 스케줄러를 들여다보고 그가 이제 더 이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것을 알았다. 이수현경감은 병원에 연락을 하고 그의 방을 둘러보았다. 침대 옆에 놓여 있는 작은 탁자의 서랍이 반쯤 열려 있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서랍을 열자 서랍 안에는 작은 플라스틱이 보였다. 오래전에 사람들이 사용하던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지금은 쓰지 않는 물건을 잘 넣어 둔 걸 보면 뭔가 그가 소중히 여기는 물건 같았다. 이수현 경감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12.2
“여기서부터는 꼭 내 옆에 따라다녀야 해.” 윤이는 재영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그래, 근데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나는 더 험한 곳에 많이 다녀봤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윤이와 재영은 제3 구역으로 들어와서 유흥 지역 한 복판에 있는 주 클럽으로 향했다. “잠깐만, 저 에어카는 내가 아는 사람의 에어카 같아 보인다.” 윤이는 주클럽의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이수현 경감의 에어카를 보고 말했다. 윤이는 클럽 정문 앞에 이르자 뭔가 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낮시간이었지만 안은 너무나 조용하고 화려한 조명도 켜져 있지 않았다. “주사장님과 약속이 되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안에서는 아무 말도 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윤이와 재영이 차례로 안으로 들어갔다. “주사장님은 오늘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클럽은 며칠 동안 임시 휴업을 할 예정입니다.” 윤이가 당황한 표정을 보이자 안내 데스크에 있던 직원이 제니스에게 연락을 했다. “ 제니스 씨께서 원하시면 주사장님 대신 본인을 만나셔도 된다고 하십니다. 505호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윤이는 주사장이 죽었다는 소식에 잠시 놀라기는 했지만 그가 평소 건강이 안 좋았기에 죽음은 그에게 언제 일어나도 놀라지 않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네가 만나게 해 주겠다는 분이 죽은 거구나.” 재영은 조용히 윤이에게 말했다. “응. 일단 제니스를 만나러 가보자. 주사장만큼 이곳에 대해 잘 아는 분이야.” 윤이와 재영은 5층으로 올라갔다.
5층에 내리자 아래층과는 달리 환한 복도 양쪽으로 방문들이 있었다. 505호는 복도의 가장 끝 쪽에 있었다. “이 건물은 3 구역에서 현재 가장 오래된 건물 중의 하나야. 백이십 년 전에는 이곳이 유명한 호텔이었데.” 재영은 윤이가 모르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구나. 나는 여기가 과거에 호텔인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오래된 장소인지는 몰랐어.” 방문 앞에 도착하자 윤이와 재영이 오는 것을 알고 있던 제니스가 나와서 문을 열어 주었다. “어서 오세요.” 제니스의 방은 오래된 가구들이 곳곳에 놓여있고 두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어디를 쳐다보던 도시가 훤히 내다 보였다. “여기 소파에 편하게 앉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층에서 이야기를 들어서 아시겠지만 오늘 오전에 주사장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저도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며칠 전에 저와 통화할 때는 아프시단 말씀을 안 하셨거든요.” “수명이 일 년 이상 남아 있었는데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건 그렇고 옆에 계신 분이 이재영박사님이신가요? 저는 제니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언어학자 이재영이라고 합니다. 유흥지역의 언어들에 대한 조사를 하기 위해 왔습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어떤 것을 도와 드릴 수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알려주시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제니스는 별 다른 거부감 없이 재영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윤이가 보기에는 주사장이 없어도 재영의 리서치 일은 잘 될 것 같아 보였다. “근데 제가 책이나 영화로만 유흥지역에 대해 알고 있어서 실제 유흥지역을 며칠 관찰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궁금한 점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는 게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며칠 이곳에 머무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원하시면 여기 얼마든지 계셔도 됩니다. 단지 좀 불편하실 겁니다.” “근데 네가 여기 혼자 있을 수 있어? 나는 여기 오래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난 괜찮아. 혼자 여기 있어도 돼. 근데 돌아갈 때 혹시 와줄 수 있겠니?” “그래,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저 그런데 혹시 여기 이수현 경감님이 계신가요? 제가 주차장에서 경감님의 차를 봤거든요.” “네, 그분도 지금 여기 머물고 계십니다.”
12.3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수현 경감은 윤이를 보자 다소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여겨졌는지 무척 놀라워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혹시 주사장의 장례식에 참석하려 오신 건가요?” “아닙니다. 제 친구가 제3 구역에서 조사를 할 게 있다고 해서 도와주려고 왔습니다. 저는 여기 와서 주사장님 소식을 들었습니다.” “친구분은 정보국에서 일하시는 분인가요?” “아닙니다. 언어학자인데 이곳의 언어를 조사할 게 있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이수현 경감과 윤이가 서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재영이 다가왔다. “저는 이재영이라고 합니다. 윤이 친구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수현이라고 합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저는 3 구역에 처음 와보는데 이곳은 백 년 전 과거에 살고 있는 것 같군요. 과거에는 세계 어디를 가도 사람이 죽으면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장례식을 치렀다고 하는데 아직도 이곳은 그 의식을 치르고 있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재영의 말처럼 주클럽의 1층 바와 룸은 주사장의 죽음을 추모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 차서 북적거리고 있었다. “여긴 아직 과거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주사장이 3 구역에서는 꽤 유명한 인사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손님들이 와 있는 거겠죠.” “아, 그런 이유가 더 크겠네요. 그런데 경감님께서는 여기 오래 계실 건가요?” “최소한 주사장의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는 있을 겁니다. 주사장의 장례식은 이번주 일요일까지 계속된다고 합니다. 3 구역에 흩어져있던 주사장의 지인들이 다 오는 것 같습니다." "저같이 3 구역의 언어를 조사하는 학자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군요. 저는 그럼 저쪽 테이블 사람들하고 잠시 이야기를 하고 오겠습니다.” 재영은 사람들이 북적 거리는 다른 테이블로 거침없이 걸어갔다.
“굉장히 용감한 친구를 두셨군요. 저렇게 적극적이고 용감한 사람은 보기 드문데 말입니다.” “네, 어릴 때부터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서 그런지 아니면 여러 나라 언어를 배워서 그런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친구입니다. 여기 머무는 동안 혹시 위험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경감님께서 잘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 “흠,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저기 보세요. 벌써 모르는 사람들 테이블에 앉아서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이수현 경감과 윤이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케이가 그들의 테이블로 왔다. “여기는 김윤 씨예요. 이 친구는 제 일을 돕고 있는 케이입니다.”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김윤이라고 합니다.” “여기 경감님 외에 1급 시민이 두 분 계셔서 누군가 했는데 한분은 경감님 지인이셨네요. 지금 이곳 사람들은 모두 3급 시민이고 로봇도 저밖에 없습니다.” 케이가 홀 안의 사람들을 스캔한 인구 구조 정보를 읊조렸다. “다른 1급 시민 한분은 저쪽 테이블에 계시는 여자분이에요. 윤이 씨 친구분이시니까 나중에 마주치면 인사하면 됩니다.” 이수현 경감은 케이가 1급 시민을 찾아서 홀 안을 두리번거리자 미리 정보를 알려주었다. “여기 며칠 있으면 주사장의 지인들을 다 볼 수 있겠네요. 아마 내일부터는 전 세계에서 술과 마약에 관련된 거물급 인사들이 올 겁니다.” “그렇겠네요. 그런데 저는 사람이 죽은 뒤에 이렇게 그 사람의 시체가 있는 곳에 모여서 애도하는 게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미 죽은 사람의 물리적인 실체 곁에 와서 꼭 애도를 표해야만 하는 게 비효율적으로 느껴집니다. 이런 문화가 사라진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그럴 수 있지만 저 사람들은 서로 위로하는 방법 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사장같이 비공식적으로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죽었으니 그가 가졌던 것을 얻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