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S Dec 02. 2023

주황색 포장마차

입맛의 성장_호떡

겨울이 오면 우리 집을 올라가는 언덕길 입구에 주황색 포장마차가 생겼다. 정확이 몇 월 며칠이라기보다는 그저 손이 시리고 입김이 나오는 시기가 되면 포장마차가 생겼다. 겨울 방학을 하기 전부터 생긴 것은 확실하다. 나는 학교 갔다 오다가 포장마차를 꼭 지나쳤다. 가끔은 호떡을 사 먹기도 했는데 호떡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한 것은 내 눈에는 마법 같은 호떡 만들기를 구경하는 거였다. 


포장마차 안에서는 넓적한 판에 기름이 지글거리고 그 위에 호떡이 구워졌다. 호떡을 만드는 아주머니는 하얀 밀가루 뭉치를 기름기 묻혀가면서 둥글게 만들어서 가운데 흑설탕을 한 수저 넣는다. 그리고 동그란 반죽을 설탕이 안 나오게 몇 번 손으로 여민다. 마침내 지글거리는 판에 동그란 반죽을 놓는다. 기름이 자글거리며 반죽을 익힌다. 재빠르게 다른 반죽도 같은 순서로 만들어 계속 판에 올린다. 그리고 동그랗고 납작한 쇠로 된 누름판을 잡아서 처음에 놓았던 반죽부터 꾹 누르기 시작한다. 드디어 호떡 모양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누름판의 한쪽 끝을 호떡 밑으로 넣어 재빠르게 리듬을 타면서 호떡을 한 번에 뒤집는다. 모든 철판 위의 반죽은 다시 이 누르는 과정과 뒤집는 과정을 거쳐서 호떡이 된다. 아주머니는 이 일련의 과정을 끝내면 누름판으로 호떡을 살살 굴리면서 타지 않게 움직여 준다. 조금 있으면 처음 놓았던 것부터 앞에 있는 쇠로 만든 접시에 순서대로 꺼낸다. 호떡을 사가는 사람도 그 자리에 서서 먹는 사람도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호떡이 커다란 판에 나오기 시작하면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금방 구워진 호떡은 기름이 있어서 겉도 뜨겁지만 안에 있는 설탕이 달구어져서 설탕물은 더 뜨겁다. 그래서 겉을 조금 뜯어먹으면서 안으로 찬 공기가 들어가서 식도록 해야 한다. 나처럼 가끔 사 먹어도 한번 입안을 데어 본 사람은 그걸 알게 된다. 호떡이 나오면 살짝 두꺼운 잡지 같은 종이를 잘라 만든 네모난 종이로 호떡을 감싸 쥐고 여러 번 후후 분다. 그때 나오는 달큼한 설탕의 냄새와 밀가루가 기름에 탄 냄새는 향기롭다.


만약 이때 호떡을 그냥 베어 물면 뜨거운 설탕이 입천장과 혓바닥을 다 데게 만든다. 그래서 설탕물이 나오기 전의 호떡 끝부분을 조금 떼어먹은 뒤에 김이 빠지게 후후 불어 주는 게 중요하다. 그러고 나서도 조금 기다려야 한다. 안전하게 먹으려면 인내심이 필요한 게 호떡이다. 하지만 시간은 이럴 때 잘 안 간다. 호떡이 알맞게 식기를 기다리는 이런 유의 기다림에서는 일초가 십 분보다 늦게 간다. 하지만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하여 기다린다. 


호떡에서 폴폴 나던 김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 살며시 호떡을 깨문다. 호떡의 첫 입은 아직 달콤한 설탕이 왕창 나오는 중앙 부분은 아니다. 달콤함은 덜하다. 하지만 쫄깃한 속과 바삭한 껍데기만 씹어도 황홀해서 두근거린다. 설탕이 들어간 부근은 얼마나 더 맛이 좋을까 상상을 한다. 조금씩 조금씩 호떡을 베어 물고 가운데로 전진을 한다. 중간쯤으로 다가가면 드디어 설탕이 왕창 배어 나온다. 씹을 때 옆으로 설탕물이 떨어지지 않게 잘 먹어야 한다. 중간부터는 알맞게 식은 설탕과 쫄깃한 호떡의 껍데기가 풍요로운 조화를 이룬다. 입술이 번질거리는 것도 잊고 호떡을 베어 물고 씹고 반복을 한다. 어느새 남은 건 미끈거리는 입술과 호떡을 잡았던 종이뿐이다.


중학교를 들어갈 때부터는 호떡을 잊어버렸다. 길거리에 호떡 포장마차도 없어졌고 무엇보다 호떡 말고도 다른 먹을게 풍부했던 것 같다. 붕어빵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붕어빵은 현란한 기술이 필요 없고 만들기 쉬워서 일수도 있다. 


어쨌든 요즘에는 내가 알던 호떡은 사라졌다. 가끔 호떡을 파는데 가보면 기름에 튀겨진 호떡이나 화덕에 구운 호떡이 있다. 아주 가끔 티브이에서 유명한 호떡집이 나오는데 대부분 칠팔십 대 장인들이 만드는 호떡이 내가 먹던 호떡이다. 항상 어딘지 표시해 놓고 지방에 가면 가봐야지 하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찾아가 보지 못했다. 요즘처럼 저녁에 집으로 오는 길에 자동차와 거리의 불빛이 따스해 보이면 호떡 생각이 난다. 이번 겨울에는 호떡을 먹으러 여행을 가야겠다. 

이전 07화 밤의 만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