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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Jan 20. 2024

밤의 만찬

입맛의 성장_제사음식

우리 집에 제사가 일 년에 몇 번쯤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제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은 내가 조금 커서 늦게 자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이었다. 그전에도 제사는 우리 집에 있었겠지만 나는 일찍 자느라고 몰랐다.  어느 날 자다가 뭔가 시끌벅적해서 눈을 뜨고 거실로 나가보니 거실 가운데 한쪽으로 병풍이 펼쳐있고 그 앞으로 커다란 상위에 음식들이 쌓여있었다. 촛불도 켜져 있고 무엇보다 향 냄새가 났다. 아버지는 술잔에 술을 따라 향 위에 술잔을 돌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 앞에 술잔을 놓았다. 그리고 수저와 젓가락을 여러 가지 음식들에 한 번씩 올려놓기도 했다. 그 손놀림이 무척이나 정중하고 근엄해서 아버지한테 소리 내어 말을 시킬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제사나 차례를 지내기 며칠 전에는 할머니가 나의 손을 잡고 시장에 갔다. 빨갛고 동그란 사탕과 하얀 밥풀이 뭍은 네모난 과자등 여러 가지 신기한 것들을 샀다. 또한 생선가게 상인과 한참 실랑이 끝에 커다란 조기도 샀다. 조기를 사고 나면 동태를 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냥 딱딱하게 나무 상자에 굳어 있는 빨래 방망이 만한 커다란 동태 하나를 가리키면서 포를 떠달라고 했다. 그러면 상인은 금세라도 커다란 눈을 껌벅거릴 것 같아 보이는 동태의 머리를 반달 모양의 칼로 내려쳤다. 


동태의 머리는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통나무 도마에서 몸을 남기고 바로 옆에 쓰레기통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조금의 쉼도 없이 딱딱한 동태의 꼬리를 잡고 껍질을 후다닥 벗긴 후 아이스크림처럼 살짝 얼어있는 하얀 살 속으로 슥슥 칼을 넣어서 금세 포를 떴다. 커다란 생선이 순식간에 하얀 살점들만 남았다. 

 

조기를 사는 생선가게가 제사 시장보기의 중요한 클라이맥스라면 마지막은 대부분 약과와 옥춘을 사는 일이었다. 별로 시간이 걸릴 일도 없고 가격이나 상품의 질을 두고 실랑이를 하는 일도 없었다. 규격화된 상품이라서 그냥 주는 대로 받아서 오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약과는 제사음식에서 거의 경쟁자 없이 내 차지가 되는 가장 중요한 음식이었다. 


옥춘의 명칭이 옥춘인지 안 것은 나중에 더 크고 나서였다. 어릴 때는 그저 커다란 사탕으로 불렀다. 문제는 커다란 사탕이 색깔은 화려하지만 맛은 박하맛이 났다. 게다가 잡거나 먹었을 때 온통 손이나 입술을 물들였다. 그래서 몇 번 먹어보고 나서 옥춘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과는 과자처럼 맛있어 보이지만 막상 먹으면 뭔가 바스락 거리면서 단것도 아니고 고소한 것도 아니었다. 맛을 잘 못 느꼈다. 게다가 먹을 때 부스러기가 엄청 많이 나와서 먹고 난 후에는 부스러기를 치워야 하는 까다로운 과자였다. 


하지만 어두운 색을 띠고 있는 둥그런 약과는 모든 면에서 제사 음식 중에 최고였다. 약과는 일단 처음에는 색이 어두워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약과는 그 모습이 우울해하고 음침해 보였다. 하지만 먹어보면 가장 맛이 좋았다. 보기에는 돌처럼 딱딱할 것 같은데 먹어보면 딱딱하지도 않다. 겉은 살짝 딱딱하고 안은 끈적거리는 꾸덕한 식감이 좋았다. 마냥 단것도 아니고 은근히 달다. 손에 묻지도 않고 흘릴 부스러기도 나오지 않았다.


제사가 끝나면 어른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음식이 약과와 옥춘인데 그중에 약과는 내 차지가 되었다. 이렇게 달고 맛이 좋은 걸 왜 마다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밤이나 대추를 안주 삼아 과자처럼 드시는 어른들을 보면 참 이상할 뿐이었다. 손에 잡아도 묻어나지도 않고 부스러기가 생기지도 않는 약과는 제사 음식 중에 내 최애 음식이었다. 


할머니가 장바구니에서 물건을 하나씩 꺼내면서 물건의 질과 가격 흥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물건을 들여다보면서 같이 맞장구를 치거나 아니면 신문지 포장을 풀러 다듬거나 씻을 준비를 했다. 나는 식탁에 앉아서 그 광경을 보면서 얼른 장보기의 뒤풀이가 다 끝나고 음식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장보기와 재료 정리는 오래 걸렸다. 내가 지루해서 몇 번을 부엌과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해가 질 무렵쯤 소고기 산적과 동태 전 같은 것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쪽파와 당근이 끼워져 있는 산적을 좋아하지 않았다. 구워진 쪽파와 당근에서 나는 냄새를 싫어했다. 하지만 동태 전은 좋아해서 동태 전을 부치기 시작하면 프라이팬 옆에 앉아서 넓은 대나무 채반에 동태 전이 쌓여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부서지거나 타기라도 한 것을 어머니가 입에 넣어 주기만을 기다렸다. 그 음식들은 그렇게 기다려서 먹지 않으면 저녁 식사에는 나오지 않고 제사를 위해서 준비되는 음식이었다. 제사 음식은 미리 먹는 게 아니라고 하면서 어머니도 할머니도 나에게 제대로 만들어진 산적이나 동태 전을 주지 않았다. 


제사음식은 밤중에 제사가 끝나고 먹거나 다음날 먹어야 했는데 나에게는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내가 제사가 끝나기 전에  잠들었고 밤중에 제사가 끝나면 식구들이 다 먹어서 내 것이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에 많이 남아 있는 것은 나물이었는데 어머니는 나물을 넣고 밥을 볶아주셨다. 평소의 내 입맛에 나물은 그냥은 도저히 못 먹는 음식이었다. 도라지나 고사리는 풀뿌리 같고 숙주는 하얀 잔디느낌이었다. 그걸 씹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다. 하지만 제삿날 다음에 고추장을 넣고 나물과 밥을 볶아주면 그것보다 맛있는 음식이 없었다. 


우리 집에 밤 중에 모여서 지내는 제사가 없어진 지 오래다. 명절에도 먹고 싶은 음식만 만들어서 먹는다. 따라서 화려했던 밤의 만찬은 이제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때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녹두전이나 삼색나물이 요즘은 맛있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내가 좋아하던 어둡고 묵직한 약과는 어느 순간부터 보기만 해도 달고 끈적거려서 안 먹은 지 십 년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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