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의 성장_간장과 소고기
뚜껑이 닫힌 불투명한 조그마한 유리그릇을 연다. 그 안에는 손가락 두 마디만큼 길이의 갈색의 살코기 덩어리가 간장 안에 반쯤 잠겨있다. 가만히 고개를 숙여 코를 살짝 그릇 가까이에 대면 간장냄새와 고기냄새가 잘 섞인 묘한 냄새가 난다. 달달하기도 하고 고소하기도 한 냄새다. 곧이어 씹을 때마다 짭조름하면서 달콤하고 고기향기도 나는 그 맛이 연상돼서 침이 고인다.
엄마는 방금 지어서 퍼준 하얀 내 쌀밥 위에 숟가락으로 고기와 간장을 몇 번 떠서 올려준다. 그리고 밥 위에 있는 고기를 손으로 잡고 최대한 얇게 찢어 다시 놓는다. 털실 같은 고기가 내 밥 위에 놓인다. 그러면 나는 마침내 밥과 고기를 살살 비빈다. 밥그릇 밖으로 밥알이 나오지 않게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움직인다. 하얀 쌀은 갈색으로 점점 물든다. 그리고 이제는 밥의 냄새와 섞인 순한 맛의 간장냄새가 올라온다.
나는 밥그릇 안을 쓱 들여다본다. 얇게 찢긴 고기와 간장이 쌀밥과 잘 어우러져 있다. 밥이 식기 전에 나는 숟가락 가득 밥을 떠서 입에 넣는다. 처음에 짠맛도 난다. 하지만 씹으면 단맛도 나고 고기의 쫄깃함도 씹힌다. 씹을수록 고기에서 나오는 고기맛과 간장맛이 입안에 가득 찬다. 밥이 줄어드는 게 아깝다.
비슷한 맛으로는 갈비를 먹고 남은 국물에 비벼주는 밥도 있다. 부드러운 갈빗살의 부스러기가 들은 갈비찜 국물은 기름기가 많고 좀 진한데 거기에는 밤도 들어가 있다. 장조림 국물에 비빈 밥보다 기름기가 좀 더 많지만 맛은 더 부드럽고 향도 고급졌다. 명절 때 가끔 먹는 특별한 밥이었다.
이제는 장조림이나 갈비찜 국물에 밥을 비벼 먹지 않는다. 장조림을 본 지도 오래되었다. 죽집에 가면 같이 나오는 장조림을 본 적이 있는데 장조림이 귀한 음식인지 양이 아주 적었다. 너무 실 같아서 별로 먹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만들기 번거로워서 집에서 장조림은 안 먹은 지 오래고 갈비찜은 명절 때나 가끔 먹는다.
요즘 가장 흔히 먹는 것은 불고기를 먹고 남은 국물에 밥을 비벼 먹는 일이다. 물론 갈비찜 국물보다는 훨씬 고기 향이나 부드러움이 떨어지고 장조림보다 감칠맛도 떨어진다. 그래도 고기 향도 나고 부드러운 짠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소고기와 간장의 조합은 달걀프라이와 간장 조합만큼 밥과 잘 어울린다. 변하지 않는 맛의 조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