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의 성장_짬뽕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 속도는 제각각이지만 방향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돌아갈 수 없는 과거는 항상 좋아 보인다. 이상한 일이다. 그때는 좋아하지 않았던 그저 그런 장소나 음식도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놓여 있다는 것만으로 아득히 그리움이 생긴다.
사무실을 나가서 오른쪽으로 한 블록을 걸어가서 신호등을 기다린다. 그 신호등을 마주 보고 있으면 뒤쪽의 건물 2층에는 오래된 중국집이 있다. 중국집에서 요리냄새는 나지 않는다. 상호는 *칭이다. 칭이라는 글자가 아마도 우리말로는 경이라고 발음될 거다. 과거에 내가 다니던 중국집도 *칭, 다른 이름으로는 *경이었다. 아직도 있는지 궁금하다.
같은 지역에 같은 시기에 내가 다닌 또 다른 중국집이 있었다. 팔각정처럼 생긴 중국집이다. 주차장은 시멘트 바닥으로 만들어서 투박하지만 차를 주차할 곳은 많다. 주변에 건물도 없다. 드라이브드루도 있어서 차에서 내리지 않고 음식을 픽업해서 나갈 수도 있다. 주변에 건물도 없고 주차장 옆으로는 잡풀이 무성한 공터가 있다. 처음 가면 동네도 좋은 동네가 아니라 어쩌면 버려진 건물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고속도로와도 가깝고 팔각정건물 앞에 솟아있는 간판에 호돌이가 그려져 있어서 아는 사람은 그 허름함이 정겹다.
우리나라에서는 거리를 다니다가 조금만 노력해도 찾아 들어갈 수 있는 게 중국집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미국식 중국요리를 파는 곳이 아니라 우리나라식 중국요리를 파는 중국집은 정보가 있어야 찾아갈 수 있다. 게다가 한인타운이 있는 대도시가 아닌데 한국식 중국집에서 짜장면이나 짬뽕을 직접 면을 뽑아서 해주는 곳은 드물다. 호돌이가 반겨주는 이 중국집이 바로 그런 한국식 중국집이다.
기계로 면을 뽑을 때도 있지만 가끔은 주인 사장님이 정성을 다해서 수타면을 뽑아서 해줄 때도 있다. 사장 아저씨는 덩치가 크고 목소리도 컸다. 그리고 언제나 학생들에게 넘치게 많은 양의 음식을 내주시고 부족한 게 없는지 보러 나오셨다. 그러면서 우리들과 잠깐이라도 농담을 하고 대화를 하는 걸 좋아하셨다.
코로나 전 그러니까 최소 오 년 전이다. 화창한 늦여름 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하늘은 거침없이 푸르고 구름도 없던 날이다. 그 중국집이 생각났다. 차로 가면 6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였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그게 먼 거리는 아니었다. 한번 가볼까 생각이 들어서 구글지도를 찾았더니 아직도 중국집이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구글에 나온 사진을 보니 외관도 별로 변한 게 없었다.
추억의 짬뽕을 먹으러 갔다.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내 기억에 있던 중국집은 거기 그대로 있던 곳에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날 만큼 반가웠다. 안으로 들어가서 짬뽕을 시켰다. 덩치 큰 주인아저씨는 목소리만 들린다. 주방 안에서 지인이 왔는지 이야기 중이시다. 요리는 키 작은 멕시칸 요리사가 해준다. 그때도 있던 주인아저씨의 오른팔 요리사다. 모자밑으로 흰머리가 보인다.
짬뽕을 먹는데 밖이 어둑해진다. 차 한 데가 들어온다. 잠시 후 작은 여자아이와 아버지가 안으로 들어온다. 문득 중국집에 아버지 손잡고 갔던 기억이 났다. 꽤 큰 중국집이었다. 아버지 손을 잡고 들어가다가 내 키보다 살짝 높은 테이블들 위로 벽 여기저기에 있는 신기한 장식들을 보았다. 그때 눅눅한 것 같기도 했던 붉고 화려한 카펫과 식탁보 깔려있던 둥근 테이블들이 그리고 특유의 음식냄새가 낯설지만 흥미로웠다. 아버지 손을 놓쳤다. 멀어진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재빨리 아버지 뒤를 따라갔다.
짬뽕맛은 별로였다. 그때는 어렸고 한국음식이 귀했다. 그래서 누구랑 가도 사람수보다 거의 두배로 음식을 시켰다. 그런데도 국물 하나 안 남기고 짬뽕을 다 먹고 탕수육도 먹고 볶음밥도 먹었다. 지금은 그런 결핍에서 오는 입맛이 없어졌다. 어디를 가도 이국적이지 않다. 세상이 좁아진 걸 지도 아니면 내가 커진 걸 지도 모른다. 어둑해지는 길을 나와서 밤새 차를 달려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