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의 성장_햄버거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 햄버거가 일 순위쯤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최근에 들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최근에 인상 깊게 남은 외식 메뉴는 햄버거였다. 여행을 가거나 아니면 여행에서 돌아와서 고향기분을 느끼면서 사 먹고 싶은 것은 햄버거다. 그리고 내 기억에 추억이라고 불릴만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 중에는 햄버거와 얽힌 일들이 많다.
내 햄버거의 시작은 집에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함박스테이크였다. 빵이 아니라 밥과 먹는 동그랗고 다소 두꺼운 수제 함박스테이크다. 겉은 조금 타서 딱딱하지만 케첩을 뿌려서 밥과 함께 먹으면 너무나 잘 어울렸다. 명절 때 먹는 동그랑땡과는 크기뿐 아니라 맛자체가 달랐다. 그게 돼지고기와 소고기의 차이인 것을 몰랐다. 단지 함박스테이크에서 나는 고기 냄새가 내게는 더 고소하고 안에서 나오는 기름 맛도 좋았다.
초등학교 때는 롯데리아의 새우버거를 가끔 먹었다. 중고등학교 때 우리 학교 근처에는 롯데리아도 없었고 가까운 곳에 KFC만 있어서 햄버거를 먹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 KFC의 비스킷과 치킨만 기억이 난다. 수제 함박스테이크를 거쳐서 정말 햄버거를 먹은 것은 유학시절의 학교 앞의 맥도널드와 웬디스의 햄버거였다. 빅맥은 지금보다 거의 크기가 두 배는 되었고 웬디스의 치즈버거는 치즈향과 두툼한 고기 패티가 잘 어울렸다.
유학생 초반에 기숙사 식당에 있던 햄버거 코너는 맞춤 주문을 받던 곳이었다. 햄버거가 먹고 싶지만 주문을 유창하게 할 수가 없는 게 문제였다. 이것저것 채소를 고르고 소스까지 골라야 하는 게 귀찮기도 했지만 내가 말하면 못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그때부턴 그냥 애브리띵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나는 채소든 소스든 가리는 게 없어서 그 후로도 애브리띵이 내게 맞았다.
중부지방에서 유학하던 나는 캘리포니아의 휴양도시인 샌디에이고로 친구를 만나러 놀러 갔다. 그때 중부지방에서 보던 햄버거 체인이 아닌 캘리포니아에 있던 칼스주니어나 잭인더박스등 여러 가지 햄버거 브랜드에 일단 놀랐다. 그리고 그때 먹었던 버거 중에 인 앤 아웃버거는 햄버거의 신세계였다. 사람이 많기도 했지만 주문받으면 그때그때 만드는지 패스트푸드치고는 좀 많이 기다렸다. 하지만 금방 구운 패티와 신선한 감자튀김은 패스트푸드라고 하기에는 질이 너무 좋았다.
나중에 인 앤 아웃의 기업 기사를 봤는데 음식의 질을 유지하고 재료공급등 문제로 남부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서비스 지역을 크게 늘리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도 내 최애 햄버거 패스트푸드 브랜드는 인 앤 아웃이다. 그다음은 중부지방 햄버거 브랜드인 컬버 스다. 컬버 스는 패티는 좀 투박하고 기교가 없지만 햄버거빵이 맛있고 아이스크림보다 좀 더 고소한 프로즌커스터드가 일품이다. 파이브가이즈의 밀크셰이크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취직을 해서 직장 생활을 할 때였다.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점심으로 롯데리아를 가자고 했다. 나는 낙지가 유명한 동네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 동네는 롯데가 많은 부동산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백화점 지하에 롯데리아에 갔는데 그 당시 새로 출시된 버거를 시켰다. 그때 먹은 햄버거는 아주 달았다. 내가 먹어 본 햄버거 중에 가장 맛없는 햄버거였다. 지금은 롯데리아도 햄버거가 그때보다는 많이 괜찮아졌다.
몇 달 전이었다. 유럽에 꽤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파리에서 비행기를 타기 전 오후였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려 봤다. 기억에 남는 걸 먹고 싶은데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었다. 다시 내가 묵었던 호텔로 돌아와서 호텔 1층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호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공항에 갈 생각이었다. 우버도 호텔로 불렀으니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가면 딱 좋겠다는 계산이었다.
메뉴판을 보니 프랑스식이 아니라 서양식 식당이었다. 아침뷔페가 괜찮았으니 음식을 어느 정도 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메뉴에는 스테이크도 있고 파스타도 있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게 햄버거였다. 가격은 스테이크와 차이가 없었다. 스테이크를 먹을까 햄버거를 먹을까 조금 갈등했다. 그런데 나는 더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햄버거를 시켰다. 스테이크도 좋아하지만 프랑스식 수제버거를 먹어보고 싶었다.
햄버거는 맛있었다. 올리브유를 뿌린 루꼴라 샐러드와 얇게 썰은 감자튀김을 사이드로 줬다. 그리고 소스를 줬는데 케첩이 아니고 케요네즈색인데 좀 더 부드러운 소스였다. 햄버거는 외관상으로는 일단 컸다. 그래서 칼로 반을 잘라서 들고 먹었다. 치즈는 모자렐라와 체다 두 개를 다 넣었는데 불로 지졌는지 치즈의 겉은 바삭하게 구워져 있었다.
패티는 2센티는 되는 두께였는데 너무나 부드럽고 육즙도 터지고 그리고 무엇보다 고기 비린내가 아닌 향기로운 소고기 향이 났다. 햄버거 안에 소스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치즈와 소고기맛을 느끼기에는 딱 좋았다. 따로 준 소스를 나중에는 좀 찍어 먹었는데 그것도 맛이 좋았다. 햄버거 한 개를 먹는데 십분 이상은 걸렸다. 햄버거가 크기도 크지만 맛이 좋아서 아껴 먹었다. 스테이크 먹은 것보다 배가 불렀다.
트러플향이 나고 아보카도가 들어가고 그런 햄버거가 아니라 기본에 충실한 햄버거였다. 그런데 그 기본인 소고기 패티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날 나는 비행기에서 주는 식사를 거의 먹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햄버거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