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S Aug 23. 2024

검은 딸기

도시 스케치_소렌토

요즘 나는 국도를 운전해서 남쪽 도시를 다니는 여행에 빠져있다. 두 번 정도 갔던 길을 다시 가면 그때서야 이것저것이 보인다. 세 번째 가면 아마도 나는 내 취향에 맞는 장소를 골라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거나 밥을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고속도로는 무조건 계속 달려야 한다. 여유가 없다. 그러나 국도는 앞뒤로 차가 없고 제한 속도가 낮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달릴 수 있다. 게다가 옆으로 보이는 풍경이 많다. 나는 그런 길 위에서 지나치면서 보는 순간의 장면들을 좋아한다. 


이탈리아의 대부분 이름을 들어 알 수 있는 도시들은 고속도로와 같은 느낌이다. 앞뒤로 차가 빡빡해서 무조건 계속 달려야 한다. 사람의 물결이 앞뒤로 빡빡하다. 생각하면서 뭔가를 할 여유가 없다. 여기구나 하면서 둘러보려고 하면 앞뒤옆으로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감동을 받을 수 있는 포인트가 없다. 아, 이게 역사적인 건축물이구나 생각할라치면 사람들이 계속 밀려든다. 


소렌토에서 시내와 차로 삼십 분쯤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았다. 좁은 바다 절벽 길을 따라서 한참을 들어가서 작은 동네에 오래된 호텔이었다. 손님은 나 말고 없는 것처럼 로비 바닥은 반질거리고 한가하다. 버스정류장 앞에서 양쪽으로 상점가들이 있는 언덕길을 올라가다가 왼쪽으로 돌아 십 미터쯤 가면 호텔이다. 호텔 앞에는 돌담으로 만든 주차 공간이 있고 호텔 위쪽으로는 그 작은 마을의 시내가 끝난다. 더 이상 큰 건물은 없다.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호텔 쪽이 아니라 언덕 아래쪽으로 작은 광장을 보았다. 거기는 마치 바다를 구경할 수 있도록 절벽 위에 발코니가 있었다. 오후의 안개가 살짝 뿌옇게 바다 위로 떠있었고 거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매일 이 동네를 지나다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바다는 일상일 뿐 찾아가서 들여다보는 그 무엇은 아닐 터였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에서 호텔을 향해 올라오다 보면 정면에 작은 건물들이 줄줄이 있는데 오른쪽에 동네 상점이 언뜻 보였다. 과일과 채소를 파는 전형적인 동네 가게였다. 

 

해가 지려고 할 무렵이었다. 나는 방에 짐을 던져놓고 밖으로 나왔다. 아까 보았던 바다 쪽으로 난 발코니가 있는 광장으로 갔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길가에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작은 동네에 휴가철이 아니어서 동네 사람들은 저녁 먹으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만 혼자 동네를 돌아다녔다. 석양을 한참 보고 있었다. 바람은 습했다. 소렌토의 낮은 뜨거웠는데 제법 선선한 바람을 일으키면서 사그라지는 태양은 선선한 바람을 일으키면서 붉게 바닷속으로 퍼져갔다.


석양을 보았으니 물도 사고 간식도 살 겸 호텔 쪽으로 가는 언덕을 올라 오른쪽에 있는 상점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꽤 있었다. 크지 않았지만 각종 야채와 과일이 칸칸이 있고 냉장고에 치즈와 햄이 가득했다. 자세히 구경하고 싶었지만 동네 아줌마들이 두 명이나 있고 또 들어오는 아줌마도 있어서 작은 복도가 꽉 찼다. 카운터에 주인아줌마는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봤다. 휴가철도 아닌데 여행객이 와서 뭔가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레몬주스와 물을 들고 카운터로 왔다. 잔돈이 없어서 십 유로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을걸 생각하니 좀 그랬다. 그때 카운터 앞에 쌓아 놓은 딸기가 눈에 띄었다. 나는 딸기 가격을 물었다. 주인아줌마는 미소를 지으면서 계산기에 가격을 찍어서 보여줬다. 6유로다. 500그램은 더 돼 보였다. 나는 딸기를 샀다. 


호텔에 와서 딸기를 씻었다. 살 때는 그저 딸기가 크고 맛있어 보였는데 와서 보니 딸기색이 남달랐다.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붉은색이었다. 언뜻 이 동네 들어오다가 밭이 많이 보였는데 동네 밭에서 딴 딸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내가 이제껏 먹어보지 못한 품종의 딸기가 분명했다. 


딸기맛은 샴페인맛과 비슷했다. 많이 달지 않고 딸기향이 진하지는 않았지만 상큼한 샴페인과 같은 정도의 신맛도 있었다. 푸석거리지도 않고 쫄깃하고 과즙이 풍부하면서 크기도 컸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커다란 딸기를 계속 먹다 보니 배가 불렀다. 마지막 한알까지 순식간에 다 먹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늦게까지 섬투어를 다녔다. 그 상점의 딸기가 생각났지만 다시 가지 못했다. 다른 도시에 가서도 슈퍼를 가면 딸기를 찾았지만 가격은 더 비싸고 검은 딸기는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구글에서도 찾았지만 그 딸기의 품종이나 파는 지역을 찾지 못했다. 만약 다시 소렌토에 간다면 나는 딸기를 먹으러 갈 확률이 높다. 


내 여행은 국도다. 고속도로도 가지만 국도가 좀 더 감동적이고 인상적이다. 소렌토의 딸기도 그런 부류였다. 두고두고 딸기를 보면 생각났다. 소렌토의 아름다운 많은 것들 중에 검은 딸기가 내게는 최고였다. 맛뿐 아니라 작지만 깨끗하고 신선한 느낌의 상점과 주인아줌마의 표정, 딸기의 색과 호텔의 낡은 책상과 그런 게 다 합쳐 쳐서 추억의 감정을 만들어줬다. 소렌토에 딸기를 먹으러 간다고? 맞다. 다시 가면 맛없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다. 두 번째 가면 딸기 이름과 원산지를 물어볼 거다.

이전 01화 빌딩 숲의 뒷골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