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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Sep 21. 2024

빌딩 숲의 뒷골목

입맛의 성장_라면

얼마 전 휴게소에 들러서 라면을 사 먹었다. 돈 주고 라면을 사 먹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부대라면이었다. 라면에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적당히 들어 있는 햄과 소시지, 면발은 딱 알맞게 꼬들거리고, 국물의 양도 이상적이었다. 라면이 요리가 아닐 수가 없다. 이런 훌륭한 비율은 연구하고 개발하지 않으면 쉽게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남이 끓여주던 라면을 주로 먹었다. 그때는 라면 면발이나 국물 양 또는 토핑에 대해서 취향이란 게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가끔 아침 먹기 싫다고 하면 어머니가 라면을 끓여주셨다. 아침은 먹기 싫어도 라면은 맛있게 먹었다. 


유학생 때는 라면을 한 박스 사서 거의 매일 먹었던 적도 있다. 왜냐면 그건 맛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요리하는데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 귀찮아서가 컸다. 그런데 그건 얼마 못 갔는데 라면 자주 먹다 보니 어느 날부터 면발에서 밀가루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라면도 질릴 수가 있었다. 그래도 그 이후에는 가끔 kfc에서 팔던 핫윙을 한 박스 사서 라면과 같이 먹으면 조화가 참 좋았다. 


회사에 들어가서는 아침 라면을 가끔 먹었다. 물론 나는 해장라면이란 걸 먹을 정도로 술을 먹지 않았다. 그러나 가끔 일찍 출근을 하면 업무 시작 전에 라면 먹으러 가자고 하는 동료나 선배가 있었다. 회사 뒷골목에는 아침에 라면을 해주는 집이 두 곳이 있었다. 하나는 뒷골목 빌딩 지하에 있는 분식집이고 또 하나는 뒷골목에 오래된 단층 건물이 모여있는 맛집 거리의 낙지집이었다.


지하분식집 라면은 대리님이랑 같이 가면 서비스로 라면에 만두를 서너 개 넣어주셨다. 단골 대리님 왔다고 주인아주머니가 해주시는 서비스이다. 낙지집의 아침라면은 콩나물을 듬뿍 넣은 해장라면이었다. 커다란 스탠그릇에 주는데 콩나물과 대파가 적당히 익어있고 국물이 칼칼하면서도 시원했다. 그곳은 우리 팀장님 단골이었다. 


그 시절 나는 팀장님에게 라면에서 파의 역할이란 걸 들었다. 시원한 국물을 원하면 흰 부분을 처음부터 넣고 끓이고, 끓이고는 파의 파란 부분을 넣는다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내가 사리곰탕면을 끓이면서 확인했다.


지금은 청계천위에 고가차도가 사라졌다. 고가차도를 타고 오다 보면 옆으로 보였던 에어컨과 전깃줄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낡은 건물들도 사라졌다. 그때는 팀장님이 하시는 말씀을 열심히 듣고 늦게까지 회식을 했다. 아침에는 라면도 먹으러 선배들을 따라갔다. 그런 나도 이제는 사라졌다. 을지로입구와 광화문의 엣 거리가 흑백 역사 사진첩에 있어야 하듯이 나의 모습도 기억 속에 낯설다. 


무교동 서린동 서소문 태평로 광화문등 시청과 을지로 일대의 커다란 변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이제 내가 라면을 사 먹던 미로 같던 뒷골목의 가게들이 사라지고 높은 빌딩들이 서있는 거리에 가끔 간다. 라면집들은 사라졌다. 아직도 몇몇 맛집들은 있다. 하지만 그때의 그 거리가 아니다. 


요즘은 노포 맛집이라고 사람들이 찾아간다. 고깃집이며 북엇국집 추어탕집 순댓국집 그리고 콩국수집등이 남아있다. 그저 그 동네는 직장인 인구가 지속적으로 많을 뿐이고, 그래서 수요가 지속적으로 창출되고 있는 것이다. 내 기준에 그곳 가게들은 노포 맛집이라고 줄 서서 먹어야 할 정도는 아니지 하는 가게들이다.  


꽤 오래전부터 집에서 라면을 끓이지 않는다. 의외로 냄새가 많이 오래 난다. 게다가 자잘한 음식물 쓰레기가 싫다. 나는 어디 놀러 가서 가끔 라면을 끓인다. 라면은 그런 맛인 것 같다. 나가서 사 먹으면 맛있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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