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모든 누군가는
부엌 창은 양팔을 옆으로 쭉 뻗은 만큼 크다. 흰 페인트로 칠해진 벽과 호두나무로 만들어진 창틀은 아주 견고하다. 창은 미닫이가 아닌, 여닫이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창은 안으로 열린다. 만약 밖으로 열리는 창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매번 창을 여닫을 때마다 목과 등을 고무줄처럼 늘려야 했겠다. 꽤 위험한 곡예. 아무리 애를 써도 절대로 닿을 수 없는 목적지를 위해 손을 뻗는 일을 닮았다. 매우 고단한 일이잖아. 그래서 차라리 창 밖에서 무언가가 나의 공간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그러했다. 바람은 밖에서 제 곁을 머문 꽃과 풀의 냄새를 휘감고 들어 왔다.
창을 여닫는 은색 스테인리스 손잡이는 오른쪽으로 180도 움직일 수 있는데, (-) 모양으로 향하면 창문은 온전히 열리고, 아래로 향하면 창문은 잠긴다. 그리고 손잡이를 위로 향해 놓으면 창문은 아래는 잠기고 윗부분만 이십 센티 정도 열린다. 며칠 전부터, 새벽이슬을 담은 바람이 불어오기 축축하게 불었다. 바람과 좀 더 맡닿으려 창문의 손잡이도 위로 향해 놓았다. 창을 열 때마다 틈을 타고 미끄러지듯 바람이 창을 타고 넘실거린다.
창틀에 벼룩시장에서 사 온 여러 가지 소품을 두었다. 아주 작은 붓꽃 여러 개가 그려진 화사한 코발트색의 화병, 언젠가 스페인 마요르카 섬을 여행할 때 보았던 것 같은 자주색의 큰 꽃을 거칠게 그려 넣은 투박한 주전, 아이비 같은 넝쿨 식물을 넣으면 좋을 듯한 겉면이 코린트 양식으로 상아색 도자기 따위다. 분명 낡은 물건인데, 빛을 뿜고 있어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는 물건들이 있다. 그것은 아이리스가 그려진 만찬 접시와 금테가 둘린 찻잔, 에메랄드 색을 입힌 플라타너스 이파리 모양으로 조각된 뚜껑이 달린 작은 주전자, 삶은 달걀을 놓을 수 있는 은색 바구니, 하얀 도라지 꽃이 그려진 도자기 거울, 손 뜨개질로 만든 작은 컵 받침들이 휴대용 테이블 위에 진열되어 있다. 어쩌면 그것들은 아주 오래전, 그녀들의 어머니가 결혼 선물로 담아 보내준 것일 테다. 혹은 이혼한 첫 남편이 연애할 때 사줬거나, 사별한 아내가 생전 아끼던 물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사물들의 역사가 어찌 되었든, 사물이 겪어낸 지난 많은 계절이 오늘의 바람에 섞여 내 공간에 들어왔다. 사물이 견뎌냈던 그 누군가의 어느 계절에 대해 생각하다 갑자기 쓸쓸해졌다.
이런 시계를 산 적도 있다. 금테가 둘러진 매끈하지 않은 타원형의 시계에 갈색 가죽에 연노랑의 실로 테두리가 박음질되어 있는 시계였다. 시계 뒷면은 조금 바랬지만 각인된 숫자와 문자들은 뚜렷했다.
Madge
25. 12. 39
이 시계의 주인 이름은 매지, 생일은 1939년 12월 25일 혹은, 그 날은 그녀의 어떤 기념일.
가장 나를 슬프게 했던 물건들은 어떤 남자의 가판대였다. 평범한 접시나 찻잔은 물론, 오래된 책, 테두리가 벗겨진 촛대, 짚으로 만든 열쇠고리, 벽걸이 회중시계 여러 개, 손잡이가 녹이 슨 커피 뮐러, 오리나 토끼 모양 따위의 장식품, 가판을 가득 메운 소품들을 모두 1유로에 판다고 하는 늙은 남자는 서서 아무렇지 않게 울고 있었다.
짚으로 만든 열쇠고리는 집으로 가지고 오는 중에 가방 지퍼에 걸려 펜던트가 찢어졌있었고, LP 플레이어는 테스트 결과 고장 난 것을 산 것이고, 시계는 건전지를 넣어 보니 바늘이 움직이지 않았고, 행여 깨질까 봐 비닐봉지로 둘둘 말아 가져온 티포트들은 자세히 보니 이가 나가 있었다. 대부분 온전치 않았다. 닳은 것이 아닌, 고장 나고 깨진 물건들을 산 것이었지만,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불가능할 안식에 내가 기회를 준 것 같은 일종의 우월감 같은 감정과 누군가의 생을 생각지도 못한 나 같은 이가 위로한답시고, 같이 울어 주는 공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오래된 사람을 생각했다. 나에게 엄마는, 나에게 아빠는, 나에게 할머니는, 나에게 할아버지는, 나에게 동생은, 나에게 그 사람은. 그렇게 내게 있는 모든 이들을, 나에게 있을 모든 누군가에 대해서.
시간을 겪은 물건은 이야기를 품고, 이야기는 또 시간을 타고 다른 이에게로 간다. 가령, 어느 날엔 누군가는 찻잔을 앞에 두고 온갖 감정에 관해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그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이동과 탄생에 관해 이야기했을 것이고, 결코 변하지 않을 절망, 그러니까 죽음에 관해서도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것은 때론 밝은 아침의 햇살처럼 경쾌한 빛이고, 침묵처럼 어두운 색일지도 모른다. 그 이들은 그리움을 그리움대로 기억하고 싶었을 것이고, 불안 뒤로 올 행복을 초조하게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찻잔 위로 흥분이 피어올랐었거나, 적막이 내려앉았을 것이다. 하루의 모든 일과가 끝난 후, 집주인도 잠자리에 들어야 할 때쯤에는 그 모든 물건은 언제나 놓여 있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을 것이다. 어떤 물건들은 누군가의 생을 담은 채로 소멸할 수도 있고, 세기를 견디고 또 다른 이에게로 갈 것이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자리에서 또 다른 지금을 목격할 것이다. 사물들의 역사 위에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사물이 뿜는 빛에 깃든 생을 알지 못한 채 일상을 보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주 많은 것들을 자주 잊어버리니까.
지나가는 계절을 잊어 가는 쓸쓸함에 미안해져, 오늘도 창을 열어 놓았다. 여름의 바람이 창을 넘어 집으로 들어오는 동안 보라색 꽃을 피운 나무수국과 흰 접시꽃과 붉은 장미가 한창이었다. 해당화는 잎을 품던 씨앗을 주황 열매에 동그랗게 숨겨 놓았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창 앞에 섰다. 감자를 깎다 문득 입을 벌렸다. 바람이 가을의 향을 품고 내게 들어온다. 바깥 정원에서 장미를 흔들던 작은 사건들이 입안으로 들어와 혀를 감싸고돈다. 우주에 떠 있는 가장 차가운 별들이 입 속 깊숙한 곳에서 천천히 퍼지는 것 같다. 몸이 서늘해졌다. 숨을 내쉴 때마다 시대의 일들을 생각한다. 나의 지금과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과거와 어쩌면 바로 지금일 수 있는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한동안 잊고 있던 어떤 계절을 기억한다. 바람이 제 길을 따라가다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들어올 때, 이미 아주 오래전에 잊은, 어떤 계절 내 맡던 라임 나무 향기도 함께 찾아오기를 기도했다. 창은 자신을 밀고 들어오는 무엇인가에 동요하고, 창틀에 놓인 사물들은 저들을 지나오게 될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동안, 나는 언제나 오늘처럼 여기 내 부엌 안 창 곁에서 식사를 준비할 것이다. 언제나처럼, 침묵은 사건을 외면한 듯 보인다. 그러나 그 고요한 곳에서도 존재하는 소란의 주인이 있다. 가장 고요할 순간에도, 어떤 이는 온 힘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이나, 그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지금을 목격하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