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방학, 나는 아들과 함께 ‘두뇌 향상 프로젝트’를 선언했다.
처음에는 아들을 위한 계획이었다. 좋은 습관을 기르고, 독서를 꾸준히 하며, 뇌를 활성화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결심은 아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나 자신을 위한 결정이기도 했다.
나는 쉽게 미루는 사람이었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내 주변은 언제나 시작된 것들로만 가득했다. 결국, 작심삼일을 반복하는 사람이었다. 계획을 세울 때는 완벽했다. 새벽 4시에 기상하고, 책 10권을 읽고, 매일 운동까지—이론적으로는 완벽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침이 되면 알람을 끄고 “5분만 더…”를 외쳤고, 책을 펼치면 몇 장 넘기기도 전에 휴대전화기가 먼저 손에 잡혔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게으른 걸까? 아니면, 뇌가 나를 속이고 있는 걸까?
뇌의 본능은 에너지를 아끼려고 한다.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생존을 유지하는 가장 강력한 전략 중 하나는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새로운 행동을 할 때마다 뇌는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반면, 기존의 습관을 유지하면 에너지 소모가 적다. 그래서 뇌는 변화를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익숙한 것이 곧 안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출근할 때 우리는 매번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지나고, 같은 카페에서 같은 커피를 주문한다. 반복된 행동은 생각할 필요가 없으므로, 뇌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갑자기 새로운 길을 선택하거나 낯선 환경에 놓이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때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저항도 함께 작동한다.
이 길이 맞을까?
혹시 늦지는 않을까?
괜히 낯설어서 불편한데…
새로운 행동을 시도하는 순간, 불안과 불편함이 따라오는 이유다. 변화는 새로운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익숙한 안전함을 잃어버리는 감정적 부담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뇌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바로 즉각적인 보상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변화와 성장은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다. 하지만 뇌는 먼 미래보다 현재의 편안함과 익숙함을 더 좋아한다. 우리는 다이어트를 결심한 아침, 샐러드를 먹으며 건강한 삶을 떠올린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치킨, 피자 같은 야식 광고가 유난히 맛있어 보이고, 머릿속에서는 이런 속삭임이 들려온다.
‘오늘 하루만 괜찮아. 내일부터 다시 하면 되잖아.’
뇌는 즉각적인 보상을 선호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새로운 도전보다는 익숙한 것을 반복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결심하고도 밤이 되면 야식이 더 맛있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당장 먹는 것이 장기적인 건강보다 생존에 유리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것, 단 음식을 찾는 것, 미루는 습관—이 모든 것이 뇌의 즉각적인 보상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책을 펼치는 순간, 갑자기 스마트폰이 궁금해진다. 깊이 생각해야 하는 독서보다 즉각적인 자극을 주는 SNS나 영상이 더 끌리는 이유도 뇌의 본능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강력한 본능을 극복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다. ‘운동해야 한다’라고 결심하기보다 ‘매일 5분만 걸어보자’처럼 뇌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 작은 습관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목표가 거창할수록 뇌는 더 강하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보상을 활용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변화를 시도할 때, 스스로 작은 보상을 주면 뇌는 새로운 행동을 받아들이기 쉬워진다. 책을 한 챕터 읽은 후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면 작은 보상으로 몰입을 지속하기 쉽다. 뇌에 “이 행동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라고 학습시키는 과정이다.
반복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어떤 행동이 반복되면, 뇌는 점차 익숙해지고 자동화된 행동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 변화가 자연스러워진다. 아침에 이를 닦는 것처럼, 운동이나 독서도 습관이 되면 더는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없어진다.
변화는 극복해야 할 대상일까?
우리는 늘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변화를 거부한다. 그렇다면 변화는 싸워 이겨야 할 대상일까? 아니면, 변화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할까? 나는 여전히 변화를 시도하고, 뇌는 여전히 저항한다. 하지만 이제는 싸우는 대신, 협상하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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