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위에게
사위야,
원래는 네 이름을 부르지만 편지니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부르는 걸 이해해 줘.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고개도 못 들고 수줍어하던 네 모습이 생각나.
태생이 샤이한 네가 왈가닥 우리 딸과는 너무 잘 어울려서 내심 다행이다 싶어.
너희들이 결혼하고 몇 달 되지 않아 쭈뼛거리며 내게 오더니 "저, 어머니. 무슨무슨 서방이라고 부르지 마시고 그냥 이름 불러주세요." 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어.
안 그래도 사위를 그렇게 부르는 게 못내 어색해서 그냥 안 부를까 고민하고 있었거든.
우린 성향도 비슷하고 무려 mbti도 비슷하다며?
사위랑 장모사이가 딸과 엄마처럼 가깝다고 주변에서 모두 신기해해.
그만큼 우리가 서로를 배려하기 때문이 아닐지.
딸이 자기 일정이 있어서 외출해도 네가 처가에서 소파에 편하게 앉아 나랑 미주알고주알 딸 흉도 보고 하니까 어떤 때는 딸이 며느리고 네가 아들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달달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할까?
네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야.
너무 긴 이야기는 아니니 좀 들어봐 줘.
네가 자주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어.
아이들이 다칠까 봐, 네 아내가 어떻게 될까 봐 무섭다고.
가족들이 있어서 행복하지만, 이 행복이 깨질까 봐 불안하다고 했지?
불안과 안정은 한 세트니까 네가 불안하다는 건 그만큼 안정 속에 있다는 것이지.
그 안정이 달콤해서 빼앗길까 봐 불안한 걸까?
불안 속에 네가 가진 행복이 꿈틀대고 있고,
불안 속에 네가 지키고 싶어 하는 가족이 있고,
불안 속에 넌 든든한 가장이 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거야.
사실 불안은 아무도 네게 주지 않았어.
네가 만든 불안을 스스로 끌어당긴 것이지.
그러면 스스로 두려움을 만든 네가 그걸 없앨 수도 있지 않을까?
네가 네 불안의 창조자니까, 창조자의 솜씨를 부려봐도 좋고.
아, 불안이 나쁘다는 건 아니야. 불안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 그걸 이용하는 사람에 달려 있는 거야.
불안에 잠식되어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나쁜 것이지.
오늘 너의 지갑 속에, 미래에 벌 돈을 넣을 수 있을까?
네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건에 대해서 걱정을 할 수 있을까?
미래는 과거와 같이 그냥 묻혀 있는 거야.
과거는 지나간 시간에 묻혀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네가 어떻게도 해볼 수 없는 일들을 가져다가 미리 걱정하는 건 너를 어리석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그러니, 불안하다면 그냥 불안을 직시해.
불안에서 도망가지 말고 내가 불안하구나, 하고 일상을 살아. 지금을 사는 거야.
미래를 가져와 불안을 증명할 수도 없고, 과거를 가져와 불안을 대조해 볼 수도 없어.
지금 네게 있는 그 순간만이 네가 갖고 있는 전부란다.
그것을 무엇으로 만들지는 네게 달려있어.
어때,
장모의 잔소리가 길지는 않지?
내가 딸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는 사위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내 사랑만큼 행복하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