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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내가 정해 - 김보경

김보경

by 캐리소 Mar 22. 2025


"꺅~~~"


이른 새벽부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겨우 이틀 된 캄보디아 살기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바로 앞 보이는 하얀 벽에 작은 도마뱀 여러 마리가 기어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에서 관리 잘되는 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결정한 집인데 방안에 도마뱀이 기어 다니다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바퀴벌레라도 놀랐겠지만 그땐 어떻게 없애야 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토마뱀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온 집안을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며 방법을 궁리해 도 떠오르지 않아 관리실에 전화해 도마뱀이 나타났으니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엔 놀란 기색이 전혀 없다. 그래도 친절하게 사람을 보내주겠다 했다.


출근 준비 중이던 남편은 캄보디아에 살면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라며 당황하지 않았다. 잠시 후 직원들이 찾아와 이곳저곳을 살피고 약도 뿌리며 찾아보지만, 신기하게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마담!(우리나라 사모님과 비슷한 호칭) 도마뱀이 집에 있으면 재물복이 생긴데요. 우리 집은 여기보다 도마뱀이 훨씬 많아요. 날이 밝아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거면 괜찮은 거예요. 그래도 마담이 싫어하니 약은 뿌렸고 다시 보이면 연락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도마뱀을 잡아 사라진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해야 마음이 편안해질 텐데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를 도마뱀을 생각하니 불안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날 밤 화장실에 들어가는데, 발밑에 무언가 획 지 나갔다. 도마뱀이었다. 움직임이 잽싸 어떻게 해볼 수도 없었다. 화장실도 편하게 들어갈 수 없는 타국 생활이란 생각에 갑자기 서러웠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아이들과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음 날 캄보디아에 오래 살고 계신 분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도마뱀을 전부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방법이 없으니 그냥 적응하며 살라는 이야기에 당황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행기표 예약부터 쉽지 않았다. 항공사 종류도, 비행기 시간도 다양하지 않고 자정이 되어야 탈 수 있는 비행기뿐이었다.


대중교통은 택시조차 없는 이곳에서 공항까지 가는 것부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제야 이곳에 오기 전 살았던 홍콩과 캄보디아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심란한 마음도 도마뱀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도마뱀을 핑계로 녹록지 않을 캄보디아 생활에서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이미 모든 짐이 예전 살던 홍콩에서 배를 타고 캄보디아로 향했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해도 세 아이를 데리고 머물 곳도 마땅치 않았다. 게다가 남편은 캄보디아 살면 홍콩보다 불편할 거라고 괜찮겠냐고 걱정했는데 그때마다 진지한 고민 없이 가겠다고만 했었다. 현실적으로 캄보디아에 적응하는 게 답이었고 그러기에 바뀌어야 하는 건 내 마음뿐이었다.


항상 익숙한 것만 좋아했는데 결혼 후 본의 아니게 타국살이를 하며 생활양식을 수정하고 행동을 바꾸는 일은 어려웠고, 한국에 살았다면 고민할 일도 아닌 소소한 사건들에 전전긍긍해야 했다. 아이들의 예방 주사를 맞히기 위해 병원을 찾아가려면 차를 타고도 2시간 넘게 이동해야 했고, 어디를 가든 걸어 다니기엔 위험한 곳이 많아 항상 자가용을 타야 했다.


쥐가 방충망을 갉아 큰 구멍을 내어 집으로 들어와 난리가 났었고 집에서 일하던 아줌마가 내 돈을 훔쳐가고, 마트에서 날치기도 당했다. 말하기 시작하면 그곳 에피소드는 끝이 없다.

그땐 아이 셋을 키우며 이런 고생까지 하는 게 힘들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절 겪었던 소소한 시련들은 모두 그렇게 지나가야 하는 일이었고 과정이었다.


신기하게도 도마뱀 때문에 놀랐던 감정은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나에게만 들이닥친 불운이란 없었다. 이젠 감사하게도 켜켜이 쌓인 시간 덕분에 조그만 사건에도 쉽게 흔들리며 소심했던 내가 예전보다 담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안다.

덕분에 문제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는 의식적인 노력을 해내는 어른이 될 수 있었다.


- 그러니 오늘도 내 마음은 내가 정한다.

- 나만의 새벽 시간에 세수하고

- 거울을 보며 주문을 말한다.

- 긍정의 다짐이 에너지가 돼 주어

- 무엇이든 거뜬히 이겨낼 테다.





타국에서 고생하며 지냈던 서울 촌놈 보경이에게 어려움을 뒤로 넘길 수 있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여러 나라에서 함께 지지고 볶으며 문제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어른으로 자라는 자신의 모습을 아이들과 함께 지켜보는 시간들이 아니었을까요.


마음을 정할 수 있는 단단함이 훈풍이 되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가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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