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범한 전공자의 변
저는 국어국문학과 출신입니다.
그런데 전공과 무관한 삶을 살게 되었지요.
'어쩔 수 없었어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하고 변명하고 싶지만, 제 삶을 결정한 건 그때의 저였답니다.
한국문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곳에 들어가서 저는 인재도 못되었고 한국문학은커녕 제 문학 하나도 구축하지 못했습니다.
구축하려는 입구에서 방향전환을 했거든요.
그 이야기는 여기에 썼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환된 삶과 생활을 감사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제 마음의 서랍 안에는 혼자 맛보고 싶은 초콜릿처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온갖 신기한 학문 (거꾸로 말하면 문학)의 맛이 포장도 풀지 못한 채 고이 잠들어 있었답니다.
대학시절 저는 시를 전공한 학생이었어요.
지도교수님과 시 동아리에서 시집도 만들었고 과 선배들의 소설이나 평론을 읽고 감탄과 감동에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삶을 이해하고, 사람을 공부하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와 브라우닝의 삶과 에밀리 디킨슨의 글에서 생의 가장 깊은 세계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내 앞에 펼쳐질 랭보와 보들레르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먹여야 할 아이들과 벌어야 할 생활비와 가족과 직장이라는 물리적 사실 앞에 번번이 무릎 꿇었습니다.
(그때 잘 굴복했기 때문에 뒤늦게 소리 내던 제 꿈을 당당히 들여다보게 되었겠지요?)
서랍 안에 들어있는 그것은 아주 오랫동안 먼지를 폭 뒤집어쓰고 있는 거라서 먹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꺼내기까지 30년이 넘게 걸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아니, 서랍 안에 있던 것을 꺼내 먼지를 털어 빛을 보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게 정확하겠군요.
그만큼 저는 제 꿈을 소홀하게 대하고 뒷방 서랍에 방치했었어요.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못한 제게 미안합니다.
하지만 생활의 늪에 빠져 간신히 작은 숨만 붙어있던 제 꿈에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어요.
그 꿈은 자체적으로 살아있었지요.
꿈이 제게 말을 걸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나 봅니다.
제 안에서 부피를 키운 열망이 소리를 내었습니다.
언젠가는!이라는 실낱같은 것을 놓지 않고 있었거든요.
그래선지 카잔차키스의 무서운 함성이 내 안에서
주 1)
하면서 나의 칼집에서 나를 뽑아내려고 무서운 함성으로 내 귀에 외친 것입니다.
내 앞에 놓인 현실에 발목 잡혀 있지 말고, 더 크고 더 깊은 곳을 향해 출발하라는 지엄한 사명의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지금 저는 밥 해 먹여야 할 어린 자식도 없고, 돌봐야 할 약한 가족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걱정 없이 먹고 살만큼의 재산도 없습니다.
그저 제가 짊어져야만 하는 우주의 목소리가 있고 제 앞에 놓인 사명이 있습니다.
이 일에 식지 않을 열망이 있다면, 그 일을 이룰 만한 힘과 방법도 제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서툰 걸음마를 시작하는 심정으로 떠듬거리며 문장을 적었습니다. 사랑하던 시의 세계도 대부분 잊었지만요.
그렇지만 시작했습니다.
수년 전 온라인 글쓰기에 노크해서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고, 브런치에서 동경하는 작가들의 무리에서 기웃거렸습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 작용했던 것일까요?
저의 진동과 파장에 가까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들려드릴게요.
우리가 살면서 얻는 것은 실제적 행동에 따라 생기지 않는다.
우리가 얼마나 가치 있고 좋은 사람인지와도 상관없고, 존재하지도 않는 그 운명이란 것에 달려 있지도 않다.
오로지 우리가 어떻게 진동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즉,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는 것이다
느낌이 곧 끌어당김이다. 주 2)
이제 저는 제가 서랍 속에 갖고 있던 것(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던 나다움)을 꺼내 새삼스럽고도 서투르지만 행복한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전공이란 말은 어느 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한다는 말이지만, 저는 여기에 내 자아를 입혀 계속 전문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는 개념으로 얘기하였습니다.
전공을 주무르지 못한 청년에서, 전공을 꺼내 기름치고 닦고 조이는 작업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신나는 할머니가 되었다는 비범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의 전공은 무엇입니까?
주 1) 영혼의 자서전. 니코스 카잔차키스.
주 2) 여기가 끝이 아니다. 린 그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