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부터의 초대장

by 캐리소


아주 어릴 때의 제 사진을 봅니다.

눈도 작고 키도 작은 평범한 아이입니다.

너무 약해 보이는 이 아이는 표정도 투명입니다.

사진 속 두 남동생은 헤헤 웃고 있어요.

빛바랜 사진의 명도처럼 제 얼굴은 지금도 흐린 채로 남아있습니다.


심하게 내성적인 저는 존재감이 거의 없는 아이였지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제 안에 있는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궁금한 걸 물으면 혼나는 분위기였고, 집에서는 아픈 엄마가 어린 동생을 돌보는 것을 지켜봐야 했거든요. 저는 어디서도 저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내 마음은 이래요, 하고 말하는 법을 익히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림을 배우고 싶었나 봐요.

내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그림이 편했어요.

말이 아니라 그림으로 말하면 되니까요.

초등학생 때 종합장에 그린 만화는 제 주변 친구들에게 빈번하게 건네졌는데 그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오랫동안 벼르다가 엄마한테 미술학원 얘기를 꺼냈는데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어요.


그리고 잊혔지요.


그림의 바람을 접어놓은 지 30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먼저 캘리그래피부터 배우겠다고 말했어요. 공방에 가서 씩씩하게요.


저한테는 특별하고 오래된, 습관도 아니고 버릇도 아닌 신기한 현상이 하나 있어요.

어떤 대상을 속으로 멸시하거나 손가락질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 멸시한 대상과 제가 연관되는 일이 생긴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에는 예식장이 하나 있었어요.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다 보면 매일 두 번씩은 그 건물을 바라보게 되는데 한 번은 그곳을 보며 '설마 저런 낡은 예식장에서 결혼하는 사람이 있을라구!' 하면서 코웃음을 쳤는데 그 생각을 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저는 그 낡은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대학교 옆에 부설된 고등학교를 텔레비전에서 보고 저 학교에는 가고 싶지 않아,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나중에 제가 다니는 학교가 된 일도 있었습니다.

캘리그래피도 그런 경우였어요.


미용실이나 네일샾, 분식점 등에서 손글씨로 꾸민 장식인 pop 글씨를 보고 저런 것도 배우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수년이 지나 제가 pop 글씨는 아니지만 캘리그래피 글씨를 배우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저는 생각의 고리에 제가 걸려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저는 절대로 못된 심보로 마음의 고리를 만들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며 살았어요.


다시 그림 이야기로 돌아가서,

캘리그래피를 그리면서 저는 참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잡아보고는 오랜만에 잡는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도 새로웠고, 글씨를 쓰면서 몰입이 무엇인지 새롭게 경험하기도 했어요.



양윤미 시인의 전시회에 이 글씨가 전시되었습니다.
이것도요! 몇 년 만에 보는 글씨인데 정말 못써서 부끄럽네요.



글씨와 글씨 사이의 균형,

글씨의 작고 큰 조화로움,

붓끝에 자연스럽게 실려 나오는 나의 마음이 그대로 화선지에 찍혀 표현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러면서 알았죠.


내가 사는 생이 내가 표현하는 어떤 도구를 통해서든 내가 되어 나오는구나.


어릴 때 묵혀있던 내 바람은 늙지도 않고, 어디 가지도 않고, 찌그러지지도 않고, 이렇게 내가 어떤 방법으로든 꺼내기만 하면 자기 목소리를 들려주는구나, 하는 것을요.


그 목소리는 일상 속에 숨어있다가 그림을 그릴 때나 글을 쓸 때 그동안 내지 못했던 자신의 빛깔을 하나하나 펼쳐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소로가 자신의 방대한 일기장* "우리는 끊임없이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라는 초대를 받는다."라고 썼는데 이렇게 글씨와 색으로 초대된 저 자신의 표정을 선명하게 보게 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작은 이벤트에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몇 년 동안 화려한 솜씨를 뽐내는 대단한 분들이 보시면 웃으실 수도 있지만, 초보 그림쟁이는 이런 소소한 성취에도 홍작약 같은 행복을 맛볼 수 있거든요.


공모전에 작품을 내고 상 하나를 받고 보니 창작의 어려움 속에서 또 하나의 재미도 발견했습니다.


가운데 있는 게 제 작품입니다. 특선을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그저 시간에 순응하는 회색 할머니로 머무르기보다는 울긋불긋 나를 표현하는 다채로운 할머니로 살기로 했습니다.

사실 요즘 할머니들은 저보다 더 생동감 넘치게 지내신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목소리나 제 색을 내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지낸 분들이라면, 지금이라도 자신의 색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어릴 적 제 바람을 멸시했던 저는 못된 심보의 고리라도 연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나 봅니다.

이제라도 제 바람과 연결되는 신기한 현상이 제게 찾아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행복에 몰입할 수 있는 자신으로의 초대장을 열어서 신기한 일을 만나길 바랍니다.



* 소로의 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


ㆍ대문사진은 제가 그림과 글씨를 넣어 만든 부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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