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비빔밥, 맛있네요

- 새로운 관계 만들기

by 캐리소

어릴 적 하루 종일 혼자여도 무방했던 나는,

특유의 낯가림과 어눌함으로 여러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고착된 패턴으로 지내왔다.

그런데 난 그게 좋았다.


인싸 보다 아싸가 좋았고, 떠들썩한 것보다 고요함 쪽으로 나를 기울였다.

고로 지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도 퍽 제한적이다.

고딩 친구 몇 명, 교회 식구 몇 명.


고딩 친구들은 그 시절부터 나와 연결된 동창이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고, 땅콩만 한 개척 교회 식구들이야 삼십 년 동안 내가 산전수전 공중전을 치르는 과정을 다 지켜본 이웃이라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이다.




고딩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라고 해봐야 각자의 근황이나 아이들, 일상, 그리고 취미생활, 사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교회 식구들과는 생활이나 일상 말고도 신앙의 삶이라든가, 믿음의 도전과 같은 대화를 하고, 요즘은 '친구와 함께 토스 켜기'를 하는 토스 친구? 그 정도다.


그래서 평범한 나는 언제나 그런 대화가 삶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므로 삶의 이면이라든지, 삶의 밑바닥에 고인 나의 허기가 잘못된 것인 줄 알았다.


책을 좋아했지만, 북 클럽은 좋아지지 않았다.

Book이 주인공이 아니라 수다가 주인공일 때가 더욱 많았다. 책을 내 취향대로 읽을 수 없다는 단점도 있었다. 거의 베스트셀러 위주의 책선정도 맘에 들지 않았다. (늘어놓고 보니 나 완전 투덜이 스머프네!)


책을 이야기하고, 책을 까뒤집고, 책을 분해해서 맛있게 씹어 내 삶으로 들여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새벽독서 팀을 만났고 그곳에서 지담 작가님을 필두로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작가들을 보았다. (동의하지 않는 분도 있으실 듯!)

사실 얼굴 한번 보지도 못한 줌 zoom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분들과 고딩동창보다, 교회 식구들보다 더 내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있다.


왜???


엄마의 유산을 잉태하고 함께 낳아야 하니까!

각자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 그것을 토대로 독자들에게 바로 세운 정신을 펼쳐 보여주기 위해서!



그러므로 우리의 대화는

생활보다는 삶,

물질보다는 정신,

타인보다는 나,

외적인 것보다는 내면,

과거나 미래보다는 지금,

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단은 내 존재가 제대로 세워져야 내 주변이 살고, 이웃이 살고, 나아가 사회가 살 수 있다는 다소 용감한 발상의 소유자 들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성현들의 날카로운 가르침이 우리를 깨뜨리고 세워주는 훈련조교 역할을 해준다.


지금까지 내가 먹어왔던 비빔밥이 아니라 새로운 재료가 곁들여진 비빔밥을 맛본다.

갖가지 나물도 훌륭하지만, 거기에 꽃향기, 별, 우주, 하늘의 맛까지 더한.


꽃의 다채로움 하나,

별의 아스라한 맛 두 개,

우주의 광활한 맛 서 너 스푼,

내 정신을 덮는 하늘의 푸른 맛까지.



어딘지는 모르지만 나의 열망은 어느 한 지점을 향해 가고 있다.
나의 열망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 여름과 가을을 향해 가지만 아직은 따뜻한 태양과 봄의 기운밖에 느끼지 못하는 새싹과 같다.
비록 지금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지만
나는 무엇인가 되기 위해 여물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낀다.
지금이 나에게는 파종기다.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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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소로우도 무엇인가 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씨앗을 심는 일에 비유하고 있었다.

나도 나의 파종기를 보내고 있다.


지금도 책선정은 내 몫이 아니다.

지담 작가님의 세심한 코칭 후에 한쪽으로 치우친 나의 정신에 들이부어 읽고 적셔야 할 책들을 농부처럼 정해주신다.


근데, 의외로 맛있다!!!


책을 이야기하고, 책을 까뒤집고, 책을 분해해서 맛있게 씹어 내 삶으로 들여오는 것이 이제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과거 누구보다 큰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살려고 애썼던 반면, 그분의 광대함 앞에 겨자씨 같이 작은 나의 존재에 다소 불균형을 느꼈으므로 아주 조금은 막막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젠 함께 읽고 같이 사유하고 각자의 정신이 세워지는 과정을 경험하고 조언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간에 대해 알게 되고, 삶의 구체적인 원리들에 다가가게 되었다.

나의 모든 것이 보통보다 뛰어나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 모든 것들이 평범함은 아니기 때문에 비범이라고 규정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평범의 껍질을 벗고 비범의 날개옷을 입은 것이다.

이제 싹을 틔워도 좋을 만큼 충분히 오래 땅속에 묻혀 있었다*

는 소로우의 문장을 언제쯤 내 것으로 가져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날이 온다고 믿고 나아간다.

사진 pixabay


*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헨리 데이빗 소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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