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돌아봐야 할 시간

by 캐리소

가만히...

꼭 가만히 생각하는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뒤를 돌아보려면 말이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롯의 아내*처럼 과거를 못 잊어서도 아니고, 뒤에 두고 온 것들이 궁금해서도 아니다.


나의 뒤돌아봄은 앞으로 잘 가기 위한 되새김질이다.



전에 나는 귀가 심히 예민해서 빠스락 소리에도 잘 깨곤 했다. 잠결에 누군가 얘기하는 소리도, 조용히 틀어놓은 텔레비전 소리도 잘 들려서 내 숙면을 위해 우리 가족들은 늦은 시간의 일상을 즐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십이 넘어가고 중반을 지나 후반이 되니 나를 후벼 파던 소리들이 조금씩 무뎌지고 누군가의 뾰족한 소리도 그냥 흘려들을 때가 있다.

그러면서 조금씩 내 안에 동그란 내적평화가 자리 잡았다.


나는 내게 온 이 평화를 반겼다.

뾰족하고 날 선 내 감각들이 하나하나 작아지고 깎여지는 게 그리 서글프지만은 않다.

그건 그리 되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유일하게 자주 시청하는 프로그램은 인간극장이다.


이번 주엔 백세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그분은 백세인데도 퍽 건강하고 정정해서 놀라웠다.

안경도 쓰지 않고 본인 치아로 식사도 하신다.

다소 불편한 부분은 귀가 어두운 것이다.



나이가 들면 젊을 때 들었던 소리의 데시벨로 들을 수 없다. 그래서 높은 데시벨의 소리를 잘 들으면 귀나이가 젊다고 한다.

그러나 내 의견으로는, 점점 더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줄어드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이젠 사람이나 사물의 소리보다는 더 깊은 내면의 소리와 내가 돌아가야 할 자연의 소리를 듣는 편이 훨씬 낫다고 판단한다. (자연의 소리는 귀로 들을 수도 있지만, 마음의 청력이 필요할 때가 더 많다)


오십은 오십만큼 가려듣고, 육십은 육십만큼 가려듣고, 칠십도, 팔십도 다 그렇게 들어야 한다.

더 이상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와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 평가하고 판단하는 소리를 다 듣지 말고 어른의 지혜로 걸러 들어야 한다.

번잡한 소리를 자신 안에서 자중하고, 내가 가야 할 곳에 대해 더 신경을 쓰는 편이 낫다.


그렇다고 지금 있는 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난 살림을 할 것이고, 아이들이 필요할 때 엄마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의 남은 날을 어떤 소리로 채울지도 생각할 것이다.





인생의 절정기는 중년의 시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보다 완벽해지고 영혼은 성숙기를 맞이한다.*

이 문장을 만났을 때 나는 참 다행이라고 여겼다. 이제 이 절정기에 나는 어제보다 한 발 더 완벽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게 되었다.

그저 육체의 감각이 무디어져도 영과 정신의 감각은 더욱 맑기를 소망한다.


나이가 들면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 진실이다. 그러므로 진실이란 나를 더 나아지게 하는 모든 것이라고 한 소로의 말에 나는 한 문장을 더하겠다.


진실이란 나를 자연으로 더 나아가게 하는 모든 것이다!


* 성경 구약에 등장하는 인물. 신의 심판으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말을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됨.

* *나를 아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소로책 인용 : 소로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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