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지 거진 10년이 다 되어 간다.
완전한 시골도 아니고 완전한 도시도 아닌 이 마을이 내게는 몸에 맞는 의복 같다.
빌딩이 대부분을 차지한 동네나 아파트가 즐비한 곳을 방문할 때면 내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보챔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귀가를 서두르게 된다.
우리 동네는 듬성듬성 밭이 있고 밭을 일구는 동네 할머니들이 사는 곳이다.
10년 동안 벌써 두 분이나 작별을 했지만 이 동네는 삼면이 산이고 사방이 밭이어서 마음이 쓸쓸할 새가 없다.
누군가와 헤어지는 일도 자연처럼 일상이고 데면데면하다.
소로의 책을 여러 권 접했을 때 자연을 바라보는 소로의 시선이 정직하고 진실해서 무진 부러웠다.
그는 영혼을 찾듯이 자연을 바라봤고 대화했으며 어린 두더지처럼 자주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 말이 얼마나 깊은 진심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그의 오랜 친구 '에머슨'도 자연과의 연결을 통해 인간의 본유를 파헤치는 글을 썼다. 그는 자연을 떠나서는 인간은 인간답게 살지 못할 것이며 영혼의 안식도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시골 비슷한 곳에 살다 보니 어느 정도 나도 공감이 된다.
소로와 에머슨의 자연을 사라보는 시선과 우정이 햇살처럼 자연스럽다. 같이 있을 때도, 따로 있으면서 거리를 둘 때도 서로를 이해하는 양상은 열쇠를 숨기고 있는 자연의 변화처럼 같은 속성을 지닌 듯하다.
서로를 알아보는 안목, 오랜 우정, 고귀한 정신의 나눔이 서로의 대양을 탐험하면서도 결코 존중하기를 그치지 않는 자연과 닮았다.
우리가 자연의 물상(物象)을 돌아보는 하루야말로 완전히 세속으로부터 벗어난 듯하다. 하나하나의 수정체가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며 고요한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눈송이, 넓은 수면과 들판 위로 흩날리는 진눈깨비, 물결치는 밀밭, 몇 에이커나 되는 흉내쟁이 휴스토니아의 꽃물결,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희고 작은 꽃들의 잔물결, 거울 같은 호수에 비친 나무와 꽃그림자, 모든 나무들을 풍금으로 만드는 향기롭고 음악 같은 입김을 내뿜는 남쪽바람, 솔송나무와 소나무 장작들이 불꽃 속에 갈라지며 튀는 소리, 안방의 벽과 사람들의 얼굴을 환히 비춰주는 불꽃 - 이것들이야말로 아주 오랜 옛 신앙의 음악이며 그림이다. 주)
이 문장들에서 오래오래 머무르며 그가 느꼈던 매혹의 풍경들을 상상해 본다. 그가 자연을 시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는 가까이에서 그의 매혹에 나도 따라 들어가는 상상.
그러나...
나는 자연을 이해하는 감각이 현저히 떨어져 있음을 감지한다. 자연의 에너지에 동화되는 동시에 나 자신이 자연임을 발견하면서 자연의 섭리처럼 활짝 펼치고 싶은데 상상력의 시냅스가 부실해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그저 여기까지 일뿐이다.
이러한 매력들은 의학과 관련된 것이며 이들은 우리를 온건하게 해 주고 우리의 상처를 치료해 준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는 다정하고 꾸밈없으며 소박한 즐거움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며, 실체와도 가까워진 것이다. 주)
자연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더 우리다워짐을 만날 것이다.
소로와 에머슨을 자연 앞에 세워 놓으면 그냥 가만히 서있지 못할 것 같다.
뒹굴고 눕고 관찰하고 노래 부를 것이다.
시를 읊을 것이다.
그러나 눈을 내리깔고 점잖게 시만 낭송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식대로라면 사물놀이 한판쯤 휘몰아칠 것이다.
소로는 어린아이 같이 두더지를 따라다니고 에머슨은 그의 뒤를 따르며 소로의 천진함에 얼쑤! 추임새를 넣을 것이다. 상상하니 웃음이 난다. 나중에 그들을 만나면 정말 그런지 확인해 봐야겠다.
이 말없는 나무들이 무리에게 함께 살자고, 그리하여 엄숙하고 사소한 일들 어떤 교회도 어떤 국가도 이 거룩한 하늘과 영원한 세월 속에 함부로 말을 끼워 넣지도 못한다. 주)
함께 살자는 말없는 이야기를 건네는 나무들,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자는 나무처럼 살 것이다.
인간 사회의 복잡함이나 소음에서 벗어나 더 근본적인 진리를 발견하는 일상을 살아가자고 제안하는 말들.
인간의 제도나 권위가 도시와 궁전들의 추함을 비추는 자연의 진리를 왜곡하지 말아야 함을 자연이 가르치고 있다.
그들과의 연계를 잊지 않고, 그 속에 깃든 농부의 삶처럼 땅에서 의미를 찾으라는 자연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