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목표를 가졌었다.
삶이 일방적으로 주어졌고 주어진 삶이 내게 친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삶을 일으킨 존재에게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 내게 주어진 책임에 무책임했다. 몸은 움직이고 있었지만 내 정신과 영혼은 깨어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 자체가 사춘기가 가진 특성이라고 여겼다. 고등학생 시절은 치열한 내적 전쟁을 일으키던 시기였다.
모래 사이로 물이 빠져나가듯이 열의가 빠져나갔다.
분명하지도 구체적이지도 않은 목표를 가지고 의심하면서 걸어가는 길이 어땠을까?
뭔가에 화가 나 있었지만 그게 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어떤 문제가 나타났을 땐 허둥거렸다.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 수 없었고 문제를 극복하려는 노력 같은 건 남의 일이었다.
목표가 부실했기 때문에 문제를 극복할 동력을 얻지 못했고 발도 땅에 닿지 않은 듯이 지냈다.
태만은 자기 자신을 포함해 모든 인간에 대한 믿음의 부족에서 나온다. 주 1)
그렇다. 나는 나를 믿지 못했으며 내 안에 있는 정신과 불화하였고 영혼의 목소리도 부인했다. 가장 나답게 살아갈 진실한 숙제를 명 받았음에도 나를 중요하게 여기지 못하는 내가 하찮았다. 그런 스스로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이런 나를 가만두지 않았고 영혼의 속삭임이 감지될 때 반응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게 신앙이기도 했고 내 거울이 된 가족이기도 했고 삶 자체이기도 했다.
진정으로 추구할 가치가 있는 목표를 만난 후부터는 마음의 눈빛부터 달라졌다.
나보다 더 큰 목표를 설정해 놓고 가슴이 떨렸다. 내가 얼마나 작은 사람인지 알고 나니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향해 내가 움직여야 할 방향을 그리기 시작했다.
감정이나 판단을 멈추고 하루에 찍어야 할 발자국을 찍는데 집중했다.
묵묵히,
꾸준하게,
열의와 동기를 갖고.
문제가 찾아올 땐 목표를 바라봤다.
그럴 때 문제는 단순한 과정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
커다란 목표 앞에 문제는 아주 작은 돌멩이였다.
간단하지 않지만 제거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성취할 가치가 충분한 목표라고 생각하고 나의 최대치를 설정했다.
절망적인 상황도 있었다. 그것은 감정적인 나락으로 내려앉을 것처럼 나를 잡아당기기도 했다.
하지만 내겐 목표가 있다. 그 앞에서 이 상황은 나를 테스트할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거기까지 갈 근력이 있는지 없는지 목표가 저울에 나를 올려놓은 것 같았다.
목표라는 귀결은,
내가 입을 앙다물고 "해내리라! 끝에 가서 서 있겠다!" 다짐하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모든 상황은 상대적이라고 한다. 개개인의 목표나 성공 가치 등등에 따라 상황은 언제나 반전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주 2)
내게 닥친 절망상황이 처음에는 부정적으로 다가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번 더 목표점을 인식하고 다시 스스로를 다잡는데 선으로 작용하는 긍정적인 반전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목표가 크면 클수록 좋다 주 2)고 한다.
추구하는 목표의 본질을 잘 지킬 수 있다면 무엇이든 대범하게 넘길 수 있어야 한다.
작은 것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면 폴짝 뛰어오를 수 있는 명랑성과 작은 베포가 필요하다.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목표를 더 높이 설정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 목표가 얼마나 새롭게 성장할지 기대하고 있다.
주 1) 질서너머, 조던 피터슨.
주 2) 멘탈의 연금술, 보도 셰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