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찰적 균형을 향해
휴일의 식당은 다소 들떠 활기가 넘친다.
반면 2층 우리 아이들이 앉은 식탁 위엔 알 수 없는 기대와 긴장된 미소가 흐른다.
어색한 세 사람이 서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모습이다.
차에서 먼저 내린 막내아들은 2층으로 올라가 누나 맞은편에 앉았고, 둘째와 청년은 긴장이 섞인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남편은 사진으로만 봤던 청년을 보자 악수를 청했고 청년은 냉큼 선물 꾸러미를 내밀며 고개를 숙인다.
사진으로 처음 얼굴을 본 남편은 딱히 트집을 잡지는 않았지만 별로 탐탁해하지 않았다.
하긴, 세상 어떤 아버지가 자기 딸보다 흡족한 사위를 떠올릴 수 있을까?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첫인상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아들도 특유의 넉살로 대화를 이끌어갔다. 나란히 앉아있는 두 사람을 보며 남편이 "너희들 서로 닮았구나!' 하는 말에 나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만나기 전부터 괜히 걱정을 늘어놓는 남편의 말에 살짝 짜증이 났다.
남편과 아이들 사이의 다리노릇을 해야 하나 싶었다.
그냥 아이 얼굴 보고 밥이나 먹고 오자 말했지만 쓸데없는 감정에 나도 조금은 꿍해 있었다.
'악수와 선물' 이후부터 주고받는 대화가 편안해졌다.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주면서 알맞은 반응만 하면 되었다.
커피숖으로 자리를 옮기는 그 짧은 시간에 남편이 내게 브리핑하기를,
얼굴 보자마자 믿음이 생겼다니!
할 말 다했다.
아들은 연신 매형 자리가 맘에 든단다.
기가 차다.
도대체 이 남자들은 왜 이러나?
한바탕 싱거운 소동 같았던 첫 만남이 지났다.
내 마음속에 엉켜있던 걱정도 스르르 풀린다.
앞으로 이 젊은 연인을 위해 해야 할 역할이 선명해진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그저 한 발짝 뒤에서 그들의 삶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
행여 비바람이 불 때면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단단한 바위가 되어 주는 것.
이래라저래라 지시하기보다는 내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모습으로 그들을 응원하고,
섣부른 잔소리 대신 그들의 선택을 오롯이 믿어주는 것.
무엇보다 감사한 일은, 매일의 기도의 바운더리 안에 품어야 할 소중한 사람을 한 명 더 들이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지지해 줄 든든한 가족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아, 나도 설레발인가?
존 롤스의 정의론에서 이성적 요소의 의미를 읽어가면서 나는 무지의 베일을 써야 함을 알았다.
자유롭고 동등하며 이성적인 개인이 선입견 없이 자신이나 타인의 사회적 위치, 신분, 계급, 능력, 지능, 체력, 또는 선악관 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공평한 정보의 상태에서 사람을 대해야 한다고.
결국 그것이 '성찰적 균형'으로 가는 길임을.
그래서 정의롭고 윤리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의 방법론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믿으며.
그래서 나의 판단을 수정하기도 하고 검토하기도 해야 함을.
오늘 새로운 사람을 알아간 자리에서 다른 모든 것을 차치하고 내 아이가 선택한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함을 책에서 배워 또 이렇게 대입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