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을 열어봅시다. 아까 꺼냈던 짧은 검은색 원피스는 넣어두고, 긴 원피스를 꺼내볼까요? 부드러운 소재에 곡선이 살아있는... 네, 그거요. 스타킹도 같이 꺼내볼까요? 당연히 실크가 아니라 나일론이겠죠? 1930년대 후반에 만들어져 한 때 20세기의 기적이라고 불렸던, 바로 그 나일론이요.
1930년대의 패션은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길고 참담했던 침체기인 대공황과 떼놓을 수 없습니다. 왜냐고요? 불황으로 수많은 실업자가 생겨나면서, 일하는 여성을 가정으로 되돌려 보내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레 여성의 사회 진출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고, 여성에게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요구하는 복고적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머리는 길어졌고, 곡선적인 라인이 대세였으며, 치마의 길이도 다시 정강이를 가릴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이브닝드레스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당시 유행한 롱 앤 슬림 스타일은 상체는 꼭 붙고 하체는 길고 여유 있게 흘러내려 품위와 우아함을 강조했습니다. 다리를 완전히 가리는 대신 등을 깊게 노출해 고혹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죠.
한편, 사람들이 가성비 좋은 여가생활을 찾게 되면서 할리우드는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다면 아직까지도 박스오피스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이때 제작되었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킹콩>이나 <오즈의 마법사>, 디즈니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리우드는 당시 사람들에게 현실의 도피처 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침체된 경기와 달리, 할리우드 패션은 과장되고 화려한 모습을 보였죠. 자연스럽게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이 그레타 가르보, 마를렌 디트리히와 같은 유명한 배우들의 전속 디자이너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영화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면서 미국 패션은 세계의 유행을 주도하게 됩니다.
1930년대 후반, 각고의 노력 끝에 세계는 드디어 안정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