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옷장에 바지 한 벌은 있으시죠? 네? 뭐 그렇게 당연한 걸 묻냐고요? 하지만 바지가 여성들의 기본템으로 정착한 것은 1940년대나 되어서인걸요. 그 이전에는 바지가 '남장'이나 운동을 위해 입는 옷이었지, 일상복으로 바지를 입는 건 드물었으니까요.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공격한 데 이어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은 규모를 더 키웠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화려하고 불편한 옷을 입을 수 있겠어요? 일하는 여성의 비율은 높아지고, 빈발하는 공습 때면 재빨리 피신해야 하는 데다가, 옷을 만들 물자도 부족한데요.
자연스럽게 1940년대 전반의 패션은 간결하고 실용적인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티셔츠와 바지가 보편화되고, 장식은 절제되고, 치마 길이는 무릎까지 짧아지죠. 이는 유행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부가 발표한 지침이기도 했습니다. 1941년 영국 정부는 단추 개수나 스커트의 치수, 주름의 수까지도 제한하는 규정을 발표하는데, 이러한 제약 하에 만들어진 복식을 유틸리티 복식(utility clothes)라고 부릅니다.
전쟁은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밀리터리 룩이 대세를 이룬 거죠. 곡선 대신 직선적인 실루엣이 유행했고, 어깨에는 패드가 들어갔습니다. 이밖에도 견장, 포켓, 라펠 같은 디테일이 활용되었습니다. 검소하게 옷을 입었던 당시의 여성들에게 유일한 사치는 모자였는데, 비스듬하게 쓰는 작은 크기의 모자가 유행했습니다. 모자보다 실용적이라는 이유로 그물망이나 터번, 스카프도 자주 착용되었고요.
이와 같은 패션은 평화를 되찾은 1945년 이후로 서서히 바뀌게 됩니다. 매일 옷을 입고 거울을 볼 때마다 끔찍했던 전쟁을 되새기고 싶은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요. 새로운 유행에 대해서는 1950년대를 다루면서 함께 이야기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