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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발까마귀 Oct 20. 2021

1920년대, 욕망이 꽃피던 시대

햇살에 반짝이는 비눗방울처럼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보신 적 있나요? 보시지 않으셨더라도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화려한 폭죽을 배경으로 마티니가 든 잔을 들어올리는 장면을 떠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좀 더 관심이 있으시다면 개츠비가 사랑한 데이지의, 반짝이는 옷과 머리 장식도 기억하실 수 있을 테죠. 영화 <시카고>는 또 어떻고요? 주인공 록시의 짧은 머리와 끈적한 재즈,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죠.


두 영화는 모두 192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로, 당시의 시대상을 잘 담고 있습니다. 전후 경제의 황금기를 맞이하여 그야말로 비눗방울처럼 빛나던 시대, 파티 문화만큼이나 범죄가 번성하고, 성공을 향한 질주와 추락이 연달아 일어나던 것이 그때였죠.


<위대한 개츠비>에서 데이지가 착용했던 머리 장식.

하지만 제가 오늘 옷장에서 꺼내려는 것은 데이지의 드레스도, 록시의 무대 의상도 아닙니다. 바로 무릎길이의 검은색 원피스 한 벌입니다.



'리틀 블랙 드레스' 탄생


현대 여성 패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을 단 하나만 고르라면 누굴 꼽을 수 있을까요? 저는 감히 가브리엘 샤넬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프롤로그에서도 간단히 언급한 바 있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였습니다. 참정권 요구와 더불어 여성해방운동이 진행되던 시기였고, 직장에서 일하거나 사교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세련되면서도 움직이기 편안한 옷이 필요했죠. 치렁치렁한 드레스가 아니라요.


191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스타일.

1910년대에 세계의 패션을 휘어잡았던 디자이너는 폴 푸아레였습니다. 그는 여성복에서 코르셋을 배제시켰으며, 헐렁한 디자인에 강렬하고 풍부한 색채를 띤 옷들을 주로 발표했습니다. 푸아레는 신체를 옥죄지 않는 스타일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패션 모더니즘의 선두주자로 기억되지만, 그의 옷은 일상에서 입기엔 여전히 불편했죠. <타이타닉>을 떠올려 보세요. 로즈의 옷은 분명 아름답지만, 그걸 입고 돌아다니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죠.


샤넬은 그보다도 더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옷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었고, 남성 속옷에 쓰이던 저지를 편안하다는 이유로 사용했으며, 세일러 블라우스나 패치 포켓과 같은 남성복의 전유물을 여성복에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1926년, 이전에는 상복에나 쓰였던 검은색을 일상복에 도입하면서, 아직까지도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는 '리틀 블랙 드레스'가 탄생합니다.  



선망과 지탄의 대상, 플래퍼



샤넬이 1920년대에 유행시킨 스타일을 '가르손느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이를 플래퍼 스타일(flapper style)이라고도 불렀는데, 말 그대로 천방지축 말괄량이 같다는 뜻이었죠. 플래퍼는 당대의 신여성들로, 자신의 개성을 추구하며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한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스타일은 팔과 정강이가 드러나는 짧은 치마와 낮은 허리선, 직선적인 실루엣이 특징입니다. 십 년 전만 해도 드레스란 응당 발끝까지 덮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파격적인 노출이었죠.


머리 길이 역시 줄어들어서, 여성미의 정석이었던 긴 머리에서 벗어나 짧고 구불구불한 핑거 웨이브와 보브 헤어가 유행했습니다. 모자 역시 챙이 넓지 않고 두상 전체를 자연스럽게 감싸는 클로슈 햇(cloche hat)을 많이 썼고요. 한편 머리 길이가 짧아지고 옷이 단순해지니, 파티에 참석할 때는 화려한 머리띠나 터번을 쓰고, 강렬한 색감의 모조 보석을 착용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다리가 노출되는 만큼 신발과 스타킹이 패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어서, 실크 스타킹이 유행했고 신발은 검은색 펌프스를 주로 신었습니다.


플래퍼의 전형적인 모습.

물질주의와 쾌락주의가 만연했던 풍요로운 시절, 그러나 저만치에서는 어두운 구름이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향후 십 년이 넘도록 세계를 뒤흔들어놓을 폭풍우가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비눗방울은 언젠가 터지기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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