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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May 06. 2024

아무튼 서태지 5-페미니스트 서태지

서태지는 왜 10집을 내지 않는가 챕터 203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지금 여러 한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 들여질지 생각해 보면 이건 용기가 필요한 네이밍이다. 여성혐오, 미소지니 Misogyny라는 단어가 Vocabullary 2200에나 있을 때 , 2015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82년생 김지영으로 상징되는 예술적 성취가 새로운 페미니즘 리부트를 몰고 오기 전에 이미, 서태지는 페미니스트였다. 특권의식에 쩐 중년 이상의 한국남성 일부를 통칭하는 '개저씨'라는 말이 여러 여성들에게 '바로 그거야!'라는 통쾌함을 불러일으키는 작금의 시절에 감히 얘기한다. 서태지는 처음부터 페미니스트였다.


그는 룸살롱에 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1990년 초반, 많은 음악 비즈니스가 술집에서 이루어지고 룸살롱에서 여성접대인의 접대를 받으며 노는 문화가 한창일 때 그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핑계(아마도 진짜 마시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담배를 하면 했지 술은 잘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를 대며 룸살롱 뒤풀이나 회합에 가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 멤버들만 그런 곳에 갔었다고 전 매니저가 책에 쓴 적이 있다. 

룸살롱에 안 가면 페미니스트인가? 술을 마시려다 보니 가게 되고 얘기하려다 보니 장소가 없어서 가게 되고 그런 건데 너무 후려치는 거 아닌가? 그렇게 단순한가? 


감히 말하고 싶다. 예스. 그렇게 단순하다. 


남자들끼리만이 룸살롱에 갈 수 있다. 여성이 사업파트너면 그렇게 할 수 없다. 사회생활에서 여성을 효과적으로 배제하는 수단이 룸살롱이고 거기서 여성접대인의 시중이나 성적인 서비스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동료 여성들에 대한 시각이 비뚤어지게 된다. 페미니스트로부터 멀어진다. 그렇게 단순하다.

영화계에서 박찬욱과 봉준호가 룸살롱에 가는 사람이 아니어서, 커피와 우유를 마시는 사람이어서 카페에서 일 얘기를 하다 보니 차츰 영화계에서 룸살롱 접대 문화가 사라지고 유능한 여성 영화인이 많이 승진하고 전체적으로 한국 영화계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게 중론이다. 그렇게 단순하다. 

서태지는 아마 진짜 술을 마시기 싫었을 거고 워낙 사적인 사람이다 보니 혼자 있고 싶어 했을 거다. 하지만 이것은 거룩한 수줍음이라고 내가 명명하고 싶은 것이다. 사적이고 수줍은 사람들이 청정화시키는 탁류. 그리고 부수적으로 하지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여성 인권 상승.


수줍다고 그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시리라. 처음에는 나도 설마 서태지가 거창한 원칙을 가지고 룸살롱에 안 갔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20년 전에 그 당시 일반적인 여성인권에 대한 상식을 훨씬 웃도는 노래를 냈다. 바로 7집의 빅팀이다. 2004년 발매된 이 곡은 거의 교실이데아급의 현실적인 가사로 빼도박도 못하게 여성 인권을 소재로 삼았다. 그것은 곡의 배치 순서와도 연관이 된다. 바로 전 트랙에 요즘의 반동적인 20대 남자들이 할만한, 페미니즘 백래쉬같은 말이 노씽 Nothing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가 있다.


요즘 여성들이 인권운동이다 뭐다 하면서 차별당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 같은 여성 상위사회에 남성이 차별을 당하면 당했지 무슨 여성이 차별을 당한다고 그래요.

도무지 성차별 당할 게 있어야지. 안 그래요? (서태지 7집 The Issue의 3번 트랙 Nothing 전문)


빈정거리는 어조의 안 그래요?를 바로 잡아채듯이 4번 트랙 빅팀의 기타 전주가 울려 퍼진다. 강한 북소리가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이 노래는 가사에 대해 말을 심히 아끼고 별 뜻 없다고, 빨리빨리 써버린다고 했던 서태지가 해설을 '구구절절' 덧붙인 아마 유일한 노래일 것이다. 빅팀의 가사 전문이다.


Just Another Victim

너는 네 엄마에게 네 아빠에게

단지 살려만 달라고 애원했건만

결국 퍼런 가위에 처참히 찢겨 버린

테러리즘에 지워진 아이야

No more murder Stop the slaughter (샤우팅)

Sexual Assault

넌 타인의 미친 법에 저무는가

Sexual Assault

넌 넥타이에 목 졸린 채 구토를 하는 너

...

바로 네 이름 앞엔 이제 곧 어느새

너의 기를 제압할 호칭이 붙겠지

국가 통제 체계적인 학대 속에

너를 옭아맬 또 다른 절망에

No more 통제 They are not hers (샤우팅)


그 소녀의 동화 속엔

반 토막 난 이야기뿐

이제 네가 잃어버린

너를 찾아 싸워야 해

싸늘한 너의 가슴속은 소리 없지만

너는 또다시 바로바로

이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될 거야

https://youtu.be/pmRVAKRxKA8? si=Ry97 qjSU7 NL8 YKGc


2004년 당시 방송국은 이 노래가사가 직접적이게 위험하다며 이 곡과 같은 앨범 7번 트랙 FM Business에 방송 부적합 판정을 내린다. 이에 서태지는 직접 방송부적합 재심의 요청글 https://www.seotaiji-archive.com/xe/tmessage/73079을 쓰면서 여성지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성감별을 통한 여아 낙태’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며 "한국의 여성문제의 현실"을 나타내고자 했다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보수적인 남성이 여성의 임신중절권에 반대하는 거 아닌가 오해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아주 보수적인 집단에서는 서태지를 임신중절에 반대하는 공인으로 이해하고 자신들의 캠페인에 이용한 적도 있다) 하지만 후렴과 2절에 대한 해설을 보면 그의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이 얕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싸비로 반복되는 'Sexual Assault'는 "폭넓은 의미의 ‘여성에 대한 사회적 공격’"을 말하는 것이고 '넥타이에 목졸린 채 구토를 하는 너'는 "사회체제가 규정지어놓은 지배세력으로서의 남성(=넥타이)에 의해 주체성을 거세당한 채 그 고통으로 절규하는 상처받는 여성"이라고까지 말한다. 전부 서태지가 스스로 쓴 말이다.


20년 전 이 글은 팬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30대 인기절정의 남성 아티스트가 지배세력으로서의 남성(그러니까 요즘 말로는 X저씨?)를 넥타이로 묘사하고 그것 때문에 고통받는 다른 젠더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묘사했던가. 남성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인식의 최정점이 거기 있었다. (그러나 중졸이 공식학력이며 책도 잘 안 읽는다던 서태지의 수려한 글솜씨에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2003년에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정갈하면서도 명확한 내용의 성명서를 신해철을 통해 발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그의 이야기는 다시 할 기회가 있을지도.) 재미있는 것은 그때는 태지형이 무슨 말을 하든 남성팬들도 그러려니 했다는 것이다. 별로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을 거고 서태지에 대한 보이콧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태지는 그럼 여전히 페미니스트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없으니까. 그는 여전히 수줍고, 다른 향락보다는 RC조립을 즐겨하는 아저씨이며 아내와 딸을 극진히 사랑는 한다고 한다. 그리고 여성이 대다수인 팬덤을 30년 이상 어뷰즈Abuse 없이 상호존중하며 끌어가고 있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남성들은 서태지같아야 수줍어야, 사회생활을 좀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페미니스트에 가까워진다. 재미있지 않은가. 


https://youtu.be/pmRVAKRxKA8? si=Ry97 qjSU7 NL8 YKGc

빅팀 살리기 운동의 이미지 -서태지 아카이브에서 https://www.seotaiji-archive.com/xe/fanArt/340789?ckattempt=1


아무튼 서태지-서태지는 왜 10집을 내지 않는가

102: 서태지의 자연사랑과 방랑벽 - 프리스타일, 모아이, 숲속의 파이터

103: 서태지의 반항과 비판의식 - 교실이데아, 틱탁, 시대유감


201: 그가 이룬것은...

202: 지극히 사적인,

203: 페미니스트 서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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