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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Jun 03. 2024

아무튼 서태지 6-그를 그답게 하는 것

104 서태지의 고유성, 지키기 위한 싸움 - 레플리카, 수시아

레플리카 - 자주성, 유일무이성. 그를 그답게 하는 고유성

연관된 노래-수시아(2집), 내맘이야(3집), Take 2(5집), Take 4(5집), 오렌지(6집), 인터넷 전쟁(6집)


8집의 레플리카는 난 알아요, 울트라맨이야 등 빅히트송에 비해 아마도 가장 덜 알려진 서태지 노래 중 하나일 것이다. 두 장의 싱글을 먼저 발매했던 8집 아토모스 Atomos의 여덟 노래 중에 맨 나중에 '아침의 눈'과 함께 실렸으며 그래서 공연에서 들을 기회가 딱 한 번이었을 정도로 노출도 없었다. 


레플리카는 서태지 자신에 대해 쓴 노래라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주제의 가사는 2집의 수시아가 있다. 물론 그의 거의 모든 노래에서 그를 만날 수 있지만 2집의 수시아는 차원이 다르게 직접적이고 깨발랄하다. 레이브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자랑하고 신음 소리도 나니 틀어놓고 춤을 추거나 그냥 방방 뛰면 딱 맞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나를 닮을 순 없네

날 세상에 알릴 거야

나 역시 그 누구를 따라 하진 않겠어

나의 유일함을 위해

내세워요

신께서 주신 당신을

과감하게

모든 걸 부숴 버려요


실패해요

쓰러지세요

당신은 일어날 수가 있으니

다음에야 쓰러져 있던

널 볼 수 있어

https://youtu.be/GFPlAi5j7WM?si=1e-IY483P9z66QWC


신께서 주신 당신, 모든 걸 부숴버리라는 가사를 처음 들었을 땐 '흠, 젊은이의 패기가 넘치는군'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세상 고민을 다 가진 찌든 대학원생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수시아는 제목이 특이했다. 엉터리긴 하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뜻을 의도했다고 하고 서태지가 '나역시도 누구를 따라하진 않겠'다는 선언에서 남들과 다르고자 하는 그의 열망,  자신의 천상천하유아독존성을 읽을 수 있었다. 누구나 다 같은 모양으로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반항심이 어린 그에게 있었다.(사실 교실이데아도 그런 가사이다.) 자퇴이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남들과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는 결심, '신께서 주신 당신'은 '일어설 수 있으니' 도전하고 '쓰러지라'는 단순하며 강력한 제안은 자신에게 하는 주문이었다. 


많은 일들이 일어난 격동의 16년 후, 8집의 레플리카는 틀로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수시아와 같지만 더 복잡하다. 


머나먼 저 우주 위로 종을 울리면

이 높은 산 위에서 서 있는 나를 누가 발견해 줄까


나를 태워주렴 네 음성으로 저 찬란하던 햇살로

나의 서툴던 이 소망은 모래로 쌓여 흩어지고

내 이름조차도 무리들 속에서 모두 지워져 가고

그 기억 속의 불편한 부분들의 섹터를 다그쳐 마비를 시키고


구차한 관념들로 비롯된 그 알 수 없던 물음에

날 가득 채운 피의 흐름이 멈추는걸

그 온도의 차이 내 안의 추운 겨울


내 머릴 비추던 저 햇살에 나의 그림자는 움츠리고

우린 서로를 그저 닮으려고 무리한 애를 쓰는 것일 뿐

...
지탄받는 자아에 붉게 물든 핏빛 햇살과

이런 내 아픔 위로 쏟아 내리던 현란한 너의 능숙한 더러움

...

레플리카는 복제품이라는 뜻이다. 2009년 8집 공연 이 곡이 처음 연주되기 전에 그는 '남을 따라 하지 말라'고 'TV를 끄라'고 했다. 스마트폰이 세계를 장악한 지금이라면 폰을 끄라고 했겠지. 대중문화의 우매한 대량복제 속에서 나는 다르고 싶다, 너희도 달라져라 하는 게 2009년의 그의 메시지였다. 


그때 같이 발표된 레플리카 뮤직비디오는 내가 이뻐하는 것을 다 갖추고 있었다. 어떤 샤프한 영웅의 운명에 대한 도전, 세상을 구하려는 열의 그리고 실패. 서태지를 닮은 주인공의 외모와 그의 가녀리지만 당찬 목소리와 딱 맞는 슈트. 그리고 기발하게 다 모아 놓은 8집 음악의 이미지들. 어떤 장대한 Sci Fi 대하드라마의 맨 끝을 장식할 만한 드라마틱한 음악. 격정적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신들린 기타 리프... 굉장히 많은 걸 함축적으로 담아내 해석의 재미가 있을 작품이다. 

https://youtu.be/H5cSxrKWJgU?si=q9nyrdaDaWoYkGnQ



하지만 레플리카는 외로움과 실패감에 대해 노래한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나를 누가 발견해 줄까'라고 묻고 독자적이고 싶던 이 소망은 '모래로 쌓여 흩어지고' 나를 나답게 하던 '피의 흐름이 멈추'고 말았다. 우리는 그저 '서로 닮으려고 무리한 애를 쓰'고 있을 뿐이다. 영상에서는 우주를 마주 서고 있는 인간의 뒤로 지는 저녁노을 속에서, 대자연과 운명 앞에 혼자 설 수밖에 없는 어떤 고독한 존재가 드러난다. 내가 레플리카를 들을 땐 결국 어떤 영광이 아니라 실패를 하는 한 존재에 대한 연민이 피어오른다. 나는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신께서 주신 나는 고유한 무엇일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것. 싫어도, 자신의 이름과 음악은 대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결국 그가 이른 깨달음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이런 결론에 이를 정도로 자신의 고유성에 대해 고민하는 그의 집착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아티스트는 유혹에 빠진다. 서태지 같은 지위에 오른 아티스트에게 얼마나 유혹이 많았을까. 빌려주기만 해도 기획사를 차리거나 스타트업을 하거나 심지어는 정치도 가능했을 이름이 서태지였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이름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 계속 생각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하도 초심에 대한 생각, 내가 왜 처음에 음악을 시작했었지 하는 초심 생각을 많이 해서 회의 중간에 갑자기 자리에서 초심! 외치며 일어난 적도 있다'고 했다. 


사실 레플리카는 제일 나중에 얘기하고 싶었다. 8집 Quiet Night콘서트 투어에서 경건하게 그의 레플리카 연주를 듣는 청중들처럼 존경스러운 마음으로 그의 음악을 정리하고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업계가 엄청난 권력과 비리, 음모, 스캔들, 불법 성착취 등의 온상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고유성을 처절하게 지키고자 했던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커서 레플리카를 찾아 들었다. 그는 그다. (강박적으로 순결하게) 그는 서태지다. 


https://youtu.be/l0l3JOMyY2I?si=wLXgjW2_rH6ALiJo


*사족-이 글은 제가 언젠가는 모아보려고 생각하고 있는 브런치 북 '아무튼 서태지-서태지는 왜 10집을 내지 않는가'의 들어갈 음악글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굉장히 제가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서태지가 시도 때도 없이 그리워서 쓰고 있고 언젠가는 서 말의 구슬이 꿰어지지 않을까 바래보는 것뿐. 그리고 10집을 내지 않는 이유를 주절거리고 있으면 그가 혹시 10집으로 제 뒤통수를 쳐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아무튼 서태지-서태지는 왜 10집을 내지 않는가


1부: 서태지의 음악

102: 서태지의 자연사랑과 방랑벽 - 프리스타일, 모아이, 숲속의 파이터

103: 서태지의 반항과 비판의식 - 교실이데아, 틱탁, 시대유감

104: 서태지의 고유성, 지키기 위한 싸움 - 레플리카, 수시아


2부: 서태지 이야기

201: 그가 이룬것은...

202: 지극히 사적인,

203: 페미니스트 서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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