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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서태지 7 - 찰나로 스쳐 지나간 소녀

105 서태지의 플라토닉 러브

by 지현

줄리엣-순수한 사랑(뭐 순수하다니까 말이 좀 그런데 육체관계가 없는 사랑?), 세상을 구원하는 여성성, 모성

관련된 노래 - 환상 속의 그대, 락앤롤 댄스를 제외한 1집 노래 전부 즉, 난 알아요, 너와 함께 한 시간 속에서, 이 밤이 깊어가지만 (어찌나 전부 순수하신지.) 영원, 10월 4일


(아무튼 서태지를 쓰다가 한국에 갔다. 사실 3개월 이상 손 놓다가 한국에 가서 서점들을 돌아다녔다. 세상에 아무튼 시리즈로는 별의별 것이 다 출간되어 있었고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아무튼 하루끼였다. 일본작가 하루키에 대한 팬심을 담은 내용이었는데 그의 소설을 다 읽지 않아서 얼마나 저자가 정확하게 썼는지는 모르겠었다. 한 가지 알 수 있던 건 책의 많은 부분이 하루키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음? 그런 건가? ‘아무튼 서태지’도 내 이야기 반을 써도 되나? 하긴 '아무튼 서태지'는 아무나 쓸 수 있고 팬들 수만큼의 버전이 있을 테니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누가 케어한단 말인가. 결국은 누가 읽게 될까 고민하는 것과 내가 얼마나 사생활 오픈에 적극적인가를 중간에 무게를 재어가며 결정해야 하는 거겠지. )


아이들 시절에 서태지가 사랑노래를 부를 때 솔직히, 귀여웠다. 누나인 내 눈에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연하가 그때쯤 정말 상상해 볼만한 아주 이상적인 이성을 상상력을 끌어모아 아름답게 그리고 있고 그게 순진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 현실감각이 없는 순정만화 로맨스를 안 그래도 만화 주인공처럼 생긴 애가 부르네, 생각했다. 근데 그 로맨스가 찰나를 지나 오랜 시간 맺어진 적은 8집 전에는 한 번도 없었다. 서태지가 부르는 꿈속의 소녀는 항상 그의 옆에 없었다.


나 그때 가장 깊은 사랑을 했는지 몰라

언어로는 결코 전해질 수 없는 너와 나의 저 웜홀에

나는 소망해 바람을 만끽한

그날의 그 표정으로 노래해 줄게

너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 애틋한 이름 모를 언덕으로

너는 나에게 호기심 가득한

그 예쁜 목소리로 속삭여줄래

너만의 언어로 나를 안아 줘 봐 그 애틋한 언덕 위로

저 하늘로 올라간 파란 저 별들의 폭발로 내 기억들조차 사라지고 없지만

(내 마음을) 나를 뛰게 한 두근거림은 지금 어디에 너는 어디에

https://youtu.be/bQf5JawiSAk?si=WYhl5rwZdxv-kRfo

애틋한 언덕에 '웃음소리를 울려' 퍼지게 했고 '예쁜 목소리로 속삭여주'던 너, '가장 깊은 사랑을 했던' 너는 어디 있는지 모른다. 기억조차 사라졌다. 기억이 사라져서 꿈처럼 너를 인식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2004년 발표된 7집의 10월 4일에도 나온다.


왠지 요즘에 난 그 소녀가 떠올라
내가 숨을 멈출 때 너를 떠올리곤 해
내 눈가엔 아련한 시절의
너무나 짧았던 기억 말고는 없는데
넌 몇 년이나 흠뻑 젖어 날 추억케 해

네가 내 곁에 없기에
넌 더 내게 소중해 너는 여우 같아

https://youtu.be/bJHhRZ-vGSs?si=sVXQGsL3wZYoG01b

'너무나 짧았던' 시간을 같이 했던 '그 소녀는 현재 내 곁에 없'고 그래서 '더 소중'하다. 많은 사람들은 이 노래가 그의 전 아내에게 바쳐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럴 확률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 노래는 그가 이전에도 묘사했던, 아이들 시절에 그의 이상형이라고 밝혔던, 긴 생머리 소녀와 중학 시절 짧게 끝났다는 그의 첫사랑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모든 곡을 영상화한 8집의 줄리엣 뮤직비디오의 여주인공도 그것과 크게 벗어나지 않게 캐스팅되었다는 점에서 특정 누군가에게 바쳐졌다고 보기보단 그의 이상적인 여인과 사랑의 상을 그리고 있다고 보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그의 사랑 묘사는 3집의 영원에서도 짧으며 강박적으로 순결하다. 다른 하늘이 열리고 콘서트에서 그가 영원을 부를 때 그는 파리나무십자가 합창단같은 성스러운 하얀 가운을 입고 두 손을 모으고 노래하며 발레리나가 그의 주위를 영혼처럼 맴돈다. (관중들은 소리도 못 내고 흐느끼며.. 좋아했다.)


내가 멀리 있다 느껴져도

그대여 슬퍼하지 마세요

나의 그리움이 항상 너를 지켜요 날마다

함께 했었던 그 시간들이

내 눈앞엔 아른거리지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서

미련 없이 나는 이 세곌 떠나요

그댈 이젠 다신 볼순 없겠지만

내겐 가장 소중했던 너 기다릴게

https://youtu.be/74usU0gB7r0?si=uu-IknA3Y_IA5GEW

그리운 소중한 사람은 '함께 하지 못하'라고 이 세계와 저 세계로 나뉘었으며 '이젠 다시 볼 수 없다'.

영원의 가사 또한, 볼 수가 없기에 더 소중하다는 10월 4일과 맞닿아 있으며 어디에 있는지 찾아 헤매던 줄리엣의 그리움과도 일맥상통한다.


아이들 시절부터 8집 줄리엣까지, 서태지의 이성 간의 사랑은 항상 짧게 끝나고 여운이 남고 다시는 볼 수 없고 그러기에 더 소중한 사랑이었다. 사랑을 말하는 그의 노래 뮤직비디오에서 여성들은 항상 긴 머리에 하얀 옷을 입은 순결한 성모 비스무리한 소녀들이다. 그리고 찰나로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막연하게 사랑을 말하던 서태지는 버뮤다와 함께 변한다. 다음 글은 당연히 버뮤다 트라이앵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서태지-서태지는 왜 10집을 내지 않는가


1부: 서태지의 음악

102: 서태지의 자연사랑과 방랑벽 - 프리스타일, 모아이, 숲속의 파이터

103: 서태지의 반항과 비판의식 - 교실이데아, 틱탁, 시대유감

104: 서태지의 고유성, 지키기 위한 싸움 - 레플리카, 수시아

105: 서태지의 플라토닉 러브 - 줄리엣, 10월 4일, 영원


2부: 서태지 이야기

201: 그가 이룬 것은...

202: 지극히 사적인,

203: 페미니스트 서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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