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서태지의 이성애- 유일무이 버뮤다[트라이앵글]
버뮤다[트라이앵글] - #육체적사랑 #설렘 #각운끝내줌 #궁금하면들어보시라
관련된 노래- 너에게(?)외에는 없는 듯. '너에게'에서는 '두려운 일뿐이지 하면서 미룬 행동들을 버뮤다에서는 실행함. '너에게'에서 버뮤다까지는 대외적으로 16년이 걸림.
2009년 버뮤다 때 당시 서팬덤의 분위기, 첫 번째 결혼과 이혼의 스토리도 전혀 모른 채 이성애 대상으로 서태지를 연모했던 수많은 여성팬들의 술렁술렁했던 분위기를 나는 기억한다. 그가 진한 사랑을 했을 어른 남성이라는 불현듯 한 깨달음. 당연하다. 그는 그때 벌써 37세였으니 지금 일반인이 들으면 쯧쯧 혀를 찰 일이다. 팬들 사이에는 그를, 거의 신과 같은 급의, 일만 아는 천재 예술가로, 독신이지만 사랑의 가능성에 열려 있는 싱글의 자리에 두고 싶은 욕망이 있었고 이것은 앞선 글 줄리엣에도 썼듯이 서태지가 자초한 면도 없지 않다. 찰나로 지나간 첫사랑 얘기만 하며, 다가가려 하면 멀어지고, '이대로 너를 안고 싶어 하지만 생각해 봐, 생각해 봐'하면서 주저하는 그였다. 자신을 좋아하는 소녀를 지켜주는 신사, 무해하고 모범적인 아이돌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는 대중에게 보여줘 왔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발표한 8집의 두번째 싱글 Atomos Part 2 Secret (버뮤다, 줄리엣, 코마 수록)의 버뮤다 트라이앵글은 설렘의 폭탄이었다. 나도 아직 30대였을 때, 불혹도 아니라 유혹에 흔들릴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던 차에 이 잘생긴 연하남은 그지없이 섹시한 노래를 귀에 꽂아 넣은 것이다.
...
두 눈가의 눈물을 넘어선 후 어른이 됐죠
천상에서 그대가 눈뜰 때
좋은 화음처럼 이 비가 그칠 때
까진 all night long, all night long
이 밤에 이 엄숙한 비겁자의
하늘과 나의 섬들 사이에
이 성스러운 바다
뒤바뀐 섬 타락한 마음
아름다운 존재 이 모순된 밤
풀릴듯한 내 안의 puzzle
이 노래 속의 화자는 어른이며 더 이상 소녀를 달래는 또래 오빠가 아니다. 다른 어른과 함께 있어 '천상에서 그대를 눈뜨'게 하며 '올 나잇 롱' '성스러운 바다'를 느끼고 '아름다운 존재'로서 '모순된 밤'을 보낸다. 그 상대는 이제 사라지지도 않고 없어서 아름다운 그녀도 아니다. 내가 넌지 네가 나인지 헷갈리는 뒤바꾼 섬으로서의 격렬한 운우의 정. 타락한 마음이라고 까지 느낄 정도로 서로를 아름다운 존재로 느끼는 강한 경험. 퍼즐이 풀리는 것과 같이 궁금함이 해결되는 일이 노래 안에서 벌어진다. 은유지만 대놓고 육체적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서태지 스스로 인터뷰 중에 오르가슴을 표현한 노래라고 말한 바도 있다.
이 노래는 개인적으로도 나에게 치명적인 감각의 향연이었다. Secret 활동당시 그는 밴드와 함께 방송에 출연해 버뮤다를 공연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때마다 그는 가사에 맞추어 삼각형을 그리거나 손가락을 다운시키는 특이한 손동작과 노래의 절정 부분을 부르기 위해 밴드와 함게 달려 나오는 퍼포먼스로 나를 포함한 팬들을 거의 황홀경에 빠뜨렸었다. 그 중 SBS 인기가요에 나와서 밴드와 함께 버뮤다 부르는 그를 보고 내가 팬 사이트에 썼던 졸문은 거의 다 이런 찬사로 도배되어 있다.
'그는, 섹시하다. 팬들은 그동안 쉬쉬하며 조심스럽게 그 말을 입에 담았지만 이젠 그 자신이 대놓고 그렇게 말한다. 8집의 두번째 싱글 시크릿은 서태지와 서태지팬들 사이의 18년만의 은밀한 성인식이다. 더 심하게 표현한다면 첫날밤이다. 그는 그 예쁜 목소리로 속삭이며 너만의 언어로 나를 안아달라고 말하고 이 비가 그칠 때까지 올 나잇 롱 나누는 사랑에 대해 얘기한다. 우아하게 손끝으로만 ~다운 ~다운 우리를 조종하던 그는 서서히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기타는 더 이상 숨찰 수 없을 정도로 속주하고 드럼은 부서져라 내리쳐진다. 우리는 모두 달린다. 절정을 향해. 이 성스러운 바다↗~~ 그리고 그는 소리를 뽑아낸다. 존재의 바아아아아~~암. 유연하게 상체를 뒤로 젖히고 온몸으로. 우리는 얼굴을 감싸고 쓰러진다. 이완된 손을 다같이 모아 마지막 트라이앵글을 그린다. 버뮤다~ 트라이앵ㄱ~ㄹ'
https://youtu.be/yKs86GSd4IU?si=8Wsxi_CcCMIMc33J
하아... 15년 뒤에 읽으니 낯이 좀 뜨뜻해지지만 나는 아직도 서태지에게 반한 상태의 이성애자 여성으로서 버뮤다 [트라이앵글]을 즐길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섹시함을 불러일으키는 노래라면,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굵고 낮은 목소리에 끈적끈적하고 블루지한 음악을 떠올릴 텐데 나에겐 버뮤다가 최고로 섹시한 노래였다. 전성기 미모의 젊은 스타 서태지는 청명한 기타 리프로 시작했다가 이성과 본능 모두를 조각내어 해체시키는 드럼과 베이스를, 차가운 그의 미모를, 각도까지 계산된 듯한 나긋한 손끝의 표정을, 필승 이후에 최대로 높은 음역대에 도달하는 높고 날카로운 지르기까지 포함해 한꺼번에 성적인 이미지로 전달하고 있다. 그저 고마울 뿐.
이런 밴드 음악만이 버뮤다의 본령은 아니다. 사실 8집 Atomos 음반 전체에서 내가 가장 오래 들은 음악은 같이 실려 있는 버뮤다 리믹스였다. 리믹스라고 불리지만 곡의 구성을 해체하지 않고 오로지 사운드만을, 8집 내내 시도했던 네이처파운드의 각종 요소를 넣어 바꾼 음악이다. 지니라는 한 음악평론가는 버뮤다 리믹스가 '모아이의 드릴 앤 베이스, 휴먼 드림의 토이트로닉, 틱탁의 글리치, 이 모두가 사운드 구성 요소로서 동원되고 있다'며 '그 화려함과 눈부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하고 있다. (https://www.seotaiji-archive.com/xe/taijimania_memorial/359140) 아직도 이 음악을 밤에 차에서 들으면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로 승천하는 느낌이 든다. 음 하나하나가 귀에 와서 박히며 매혹시킨다.
이 곡에는 후일담이 있다. 당시 배우로 활동하던 이은성씨가 버뮤다 뮤직 비디오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서태지와 교제를 시작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정말로 드라마같은 이야기가 사족으로 붙어 다니는 것이다. 아마 이 사연 때문에 서팬덤의 열광적인 버뮤다 숭배 분위기는 잠잠해질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성적으로는 스타의 사생활이 노래 감상에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하겠지. 하지만 실제로 손이 안 가는 팬들도 있을 수 있다 생각한다.
어쩌면 남녀 간의 사랑보다 오히려 팬심이라는 것이야말로 복잡 미묘한, 진짜 풀리지 않는 버뮤다급 퍼즐인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 모순의 버뮤다이다.
https://youtu.be/km1fuG7svPY?si=jymxoFpGhUnkNr9e
아무튼 서태지-서태지는 왜 10집을 내지 않는가
1부: 서태지의 음악
102: 서태지의 자연사랑과 방랑벽 - 프리스타일, 모아이, 숲속의 파이터
103: 서태지의 반항과 비판의식 - 교실이데아, 틱탁, 시대유감
104: 서태지의 고유성, 지키기 위한 싸움 - 레플리카, 수시아
105: 서태지의 플라토닉 러브 - 줄리엣, 10월 4일, 영원
106: 서태지의 이성애적 사랑 - 버뮤다[트라이앵글]
2부: 서태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