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다양성을 융합하는 용해제다

by Lohengrin

코로나 19로 인하여 전 세계 하늘길이 막혀 있습니다. 언제 열릴지 기약할 수 도 없습니다. 지구촌의 글로벌화에 여행은 큰 축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축이 하나 무너져 있습니다. 나라마다 국경을 닫아걸고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폐쇄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측할 수 없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은 불안과 긴장의 연속을 낳습니다. 불신이 싹트고 경계만이 살 길인양 행동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바이러스의 진화만 아니면 이 불안과 긴장, 불신과 경계는 여행을 통해 넘어설 수 있는 작은 언덕에 불과했습니다. 그 해결방안인 여행을 못하니 사람 간의 관계가 점점 단절되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고 한 가지 만을 주시합니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까지 발전합니다. 그래서 여행은 사람을 이해하고 문화를 바라보며 다양성을 수용하게 하는 용해제와 같습니다. 하루빨리 이 용해제를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로 코로나 19의 가장 심한 피해를 당하고 있는 이탈리아에 다녀왔던 기억의 용해제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탈리아로 가족여행을 2011년에 다녀왔으니 벌써 10년 가까이 됩니다. 밀라노와 베네치아, 로마, 레오 마조레와 마나롤라 등 친퀘테레, 피사, 피렌체, 폼페이, 포지타노, 아말피, 나폴리까지 기억이 생생한데 시간은 벌써 상전벽해의 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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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목적지로서의 이탈리아는 백미임에 틀림없습니다. 역사 문화 예술 그리고 자연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보고 느끼고 감동할 것들로 가득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행 목적지가 정해지면 그래서 공부를 해서 사전 지식을 넣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주마간산이긴 하지만 그나마 제대로 보고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피렌체 산타마리아 기차역에 내리면 광장 건너편에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이 있습니다. 피렌체 두오모보다는 규모도 작고해서 그냥 지나쳐 두오모로 가는 경향이 많은 데 가는 길에 들러보면 성당 안에서 인생을 돌아볼 그림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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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마사치오(Masaccio)가 1425년경 그린 프레스코화 '삼위일체(La Trinit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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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치오는 서양 미술학에 있어 최초로 원근 투시법을 그림에 도입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데 그 그림이 바로 이 그림입니다. 원근법은 평면상에 공간의 깊이를 표현하는 것이지만 마사치오 이전 미술가들은 그림 안에서 차지하는 인물들의 중요도에 따라 크기를 배열해 왔습니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는 선구자가 마사치오였던 것입니다.


오늘 마사치오의 '삼위일체'그림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그림은 아래쪽에, 관위에 해골과 인골만 놓여있는 모습이 같이 있습니다. 그 관위에 한 줄의 글이 있는데 이문장을 인용하고자 서두가 길었습니다.


"나 역시 한때 지금의 당신 같았고, 당신 역시 언젠가는 지금의 나와 같을 것"이라는 문구입니다.


가슴 섬뜩한 문구이자 삶을 다시 보게 하는 문구입니다. 꼭 종교를 언급하지 않아도 세상을 보고 생각하고 깨달은 것을 표현하는 능력은 천재들의 몫인 것 같습니다. 우리 같은 범인은 그저 던져진 화두에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입니다.


생각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기재를 거쳐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될까요? 생물학적 화학작용에 의한 깊은 이야기는 차치하고 브레인에 관한 과학적 분석을 뒤로하고 그저 인문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적 의미를 먼저 집중해봅니다.


생각은 'inner talking'입니다. '안으로 말하기'가 생각입니다. 동의합니다. 이 생각과 말하기는 언어와 관계가 있습니다. 행동의 표현이 아닌 언어적 표현이 생각을 만들어내고 말하는 행위를 이끌어냅니다. 그래서 인간은 언어가 가진 '의미의 場'에 갇혔다고 표현합니다. 이 역시 동의합니다.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하며 좀 더 양질의 생존을 위해 언어라는 매개체를 발전시켜왔기에 이 언어는 공통의 합의로 정의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사과를 사과로 모두 알고 있는 것은 그 열매를 사과라고 부르자고 합일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름 지어지는 것은 모두 그렇습니다. 자동차가 그렇고 산이 그렇고 인간의 언어로 불리어지고 표현되는 모든 것은 공동체 일원이 합의하여 그렇게 부르고 이해하자고 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새로운 용어가 등장하고 은어가 등장하지만 그것이 통용되기 위해서는 구성원이 모두 그것은 그렇게 개념 짓고 정의하여 사용하자고 해야만 살아남습니다.


그래서 개념을 선점하는 者, 그 사회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념은 확실히 가져야 합니다. 정확성입니다. 디테일입니다. 개념과 의미가 공유되지 못하는 사회는 지금의 우리 사회처럼 구성원 간의 괴리만 넓어지게 됩니다. gap을 좁히고 봉합할 기본부터 다시 충실히 다지고 되돌아보는 그런 저변이 확산되어야 합니다. 인문의 사회도 뒤로 가거나 머물러서는 의미를 잃습니다. 작고 느린 微少의 변화지만 공동의 善을 향해 가는 것이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코로나 19가 사라져, 다시 세상의 모습을 보러 비행기를 탈 수 있기를, 그래서 가슴 벅찬 풍광을 마주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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