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까지 한 달 휴업 중이라 주중 아침 일과는 배달된 신문을 읽는 것입니다. 현관문을 엽니다. 바닥에 신문이 놓여 있습니다. 집어 드니 무게가 확 가볍게 느껴집니다. 직업상 집에는 아침신문이 5개가 오고 저녁에도 2개나 배달됩니다만 그동안 거의 읽어본 일이 없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박스씩 버리는 폐지로 전락한 지 오래고 간혹 사용처가 명절날 전 부칠 때 거실 바닥에 까는 용도가 전부였습니다. (언론에 계신 분께는 죄송합니다 ^^;;;;)
제가 집에서 신문을 읽지 않는 이유는 오늘 집어 든 신문의 무게만큼이나 콘텐츠가 가볍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말하면 출근할 때는 사무실에 도착해서 읽기 때문이긴 합니다. 신문뭉치의 무게를 느끼며 " 아! 휴가시즌에 접어들었음"을 직감합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펼쳐 듭니다. 오늘은 가벼워진 무게만큼 콘텐츠가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한 달씩 휴업하는 기간에는 아침시간에 신문을 펼쳐 들고 찬찬히 읽게 됩니다. 5개 신문의 제목이 온통 물난리, 전세난, 코로나입니다. 밝은 소식, 미소가 지어지는 기사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정말 이렇게 암울한 현실을 살고 있는지 되묻게 됩니다. 이렇게 집에서 아침에 신문을 읽고 있는 자체가 암울한 현실임을 직감하면 신문 활자가 눈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글자란 놈은 참 묘합니다. 보고 자해야 보이니 말입니다.
예전 같으면 오늘 아침신문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는 해운대 해수욕장의 사진이나 계곡물에 물놀이하는 사진이 1면을 장식하고 있을 텐데 --- 오늘은 폭우로 휩쓸린 참담한 광경의 사진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겁나게 내리는 창밖의 폭우를 건너다보며 빨리 잦아들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선합니다.
그래도 예전 패턴에 맞추어 여름휴가를 내신 분들도 계실 텐데 코로나 19와 장마로 갇혀 지내실 수밖에 없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사람 접촉을 최소화하는 호캉스라도 하시면서 쉬시고 재충전하시는 것이 어떠실지요? 아마 이미 시원한 계곡이나 어느 휴양지 리조트에서 마스크 쓰고 조심조심 지내고 계시는 분도 계실 테고 코로나지만 그나마 쉴 수 있는 휴가를 가슴 설레며 기다리고 계시는 분도 계시겠죠. 신문 두께가 얇아진 것만으로도 휴가철에 접어들었음을 눈치채지만 휴가 시즌임에도 마음 한편에 찝찝함을 달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장마로 세상이 물에 잠겨있지만 사실 이 한여름의 시기가 생명체에게는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고 가장 많이 비축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놀면 그만큼 생존확률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모 사피엔스는 이 치열한 시즌의 시간을 쉬고 노는 쪽으로 발전시켜 왔습니다. 너무 더워서 일의 효율이 떨어져 일을 해봐야 경쟁력이 없다는 논리의 적용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쉬고 시원한 날 좀 더 일을 많이 해서 보충하고 효율도 높이면 된다는 것이죠. 과연 그럴까요? 합리적인 생각일까요? 합리화시킨 생각일까요?
여름은 이제 앞으로 2주 정도의 시간을 통해 최고 정점을 유지할 겁니다. 이 폭우가 물러가면 폭염으로 바뀔 테죠. 그 시간은 지구에 뿌리를 두고 생명을 이어가는 모든 생물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에너지가 최대로 확산되는 시기이기에 모든 활동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행동들입니다. 폭발하듯 발현되는 에너지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생명체는 '다음'이라는 시간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최대한 축적하고 키워놓아야 다음이라는 시간을 예약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한겨울이 처절한 것이 아니고 한여름이 가장 처절한 생존의 전쟁터였던 겁니다. 귓전이 따갑도록 울어대는 매미의 짝 찾기 행위도 그렇고 작렬하는 태양의 강도를 피하지 않고 받아들여 키를 키우는 원동력으로 삼는 식물들의 경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순환 사이클에서 어느 한 지점 한 지점이 중요하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한 순간 한 지점이 무너지거나 없어지면 순환 자체가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사이클의 높이를 키우는 간격을 볼 때 한여름만큼 에너지가 집약되는 시기도 없다는 겁니다. 지금은 장마의 시샘으로 인한 폭우로 에너지 집약 시기를 자꾸 뒤로 늦추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러다 태풍 몇 번 들이닥치면 바로 찬바람 부는 계절로 접어들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더욱 커진 뇌의 기능을 이용하여 가장 활발히 움직여야 할 시기에 '휴가'라는 쉼을 넣어 놓았습니다. 생명의 연속성에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공백의 하나로 보입니다. 바로 인간만이 할 수 있고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구성 능력 때문입니다. 더 큰 도약을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을 갖고 다른 생명체들이 처절히 경쟁할 때 지켜보며 틈을 노리다 한 번에 제압해 에너지를 획득해내는 능력입니다. 능률과 효율성이라는 모듈을 경험적으로 산출해내고 그것을 엮어내 패턴으로 만들어내는 놀라운 능력입니다.
우리의 선인들은 이 무더위를 이겨낼 방법으로 '복날'이라는 것을 만들어 더위에 지쳐 떨어지는 신체기능을 높이고 에너지를 획득하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지방과 단백질이 풍부한 식사 한 끼 하는 것으로 떨어진 체력이 보강될 것이라고는 기대치 않지만 그래도 심리적으로 든든한 프라시보 효과로는 제격입니다. 이때가 되면 이걸 먹어야 하고 저때가 되면 저걸 먹어야 된다는 공식을 만들어 놓고 제철음식을 준비해온 선조들의 지혜도 대단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사고를 결정짓는 중요한 행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상황을 이야기해놓으면 그것을 듣는 사람은 자기화하여 듣게 되어 마치 자기의 현실인양 인식하게 되는 바넘 효과라는 것입니다. 혈액형이 그렇고 점쟁이의 술수가 그렇습니다. 알면서도 당한다고 점쟁이가 속이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자기 합리화하고 자기 스스로 그렇게 믿게 되어 속는다는 것조차 모르게 되고 맙니다. 똑똑할 것 같은 사람들이 사기꾼에 걸려들고 다단계에 빠지며 종교에 심취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인류 진화사에 중요한 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험을 회피하는 가장 빠른 방법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편적으로 그렇다면 나에게 적용하여 합리화를 시켜 그럴 것이다라고 믿어버리면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편과 합리를 자기화해버리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최면에 빠지게 되고 그러면 정말 생존확률은 커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이 착각과 혼돈은 허황된 것일 수 있으나 한번 그렇다고 믿게 되면 오히려 생존 효과는 높아집니다. 바로 가소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보편화시키고 합리화시켜 놓는 비율만큼 에너지 사용량은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엔트로피 최소화의 법칙입니다. 더 위험한 상황을 위해 에너지를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입니다. 사피엔스의 진화는 무섭도록 정교하게 발전을 해왔습니다. 각론적으로 접근하면 허무맹랑한 것 같지만 거시적 개론으로 보면 오히려 효율성이 높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인간은 알면 알수록 오묘한 동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자연이 생존의 전쟁을 치르는 한여름 시즌에 과감히 '휴가'라는 여유를 부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왕 즐기겠다고 결정했으면 탈진하도록 원 없이 쉬고 노는 '휴가'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코로나와 장마의 현실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을 기세입니다. 인간의 '휴가'는 정해진 기간이 있는데 이 놈의 코로나와 장마가 모두 가져가 버리는 것 같습니다. 마음만 다스리기엔 저 내리는 폭우와 코로나19가 원망스러울 따름입니다.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