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5월 16일부터 오늘까지 한 달을 쉬었습니다. 내일부터 다시 출근을 하는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직업이 있고 직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안심되고 행복한 일인지 절실히 느낀 한 달입니다. 물론 한 달 후에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쉼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직장생활 30년 동안 이렇게 한 달을 오롯이 쉰다는 것 자체가 낯설고 어설프고 황당한 일로 다가왔습니다.
한 달을 차근히 복기해 봅니다. 회사 전 직원이 돌아가며 휴업에 들어가기로 하고 쉬는 기간을 정할 때 어떻게 시간 관리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여름휴가로 열흘정도 쉬는 것 빼고는 평생 한 번도 이렇게 긴 한달을 쉬어본 적이 없기에 쉰다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될 수 도 있을 테니 매일 먹고 자고 먹고 자고를 반복해도 좋을 터였습니다. 하지만 평생 회사와 집을 쳇바퀴 돌 듯 살아온 일상이라 이틀만 쉬어도 불안할 듯했습니다. 할 수 없이 하루하루의 일과를 짰습니다. 마치 국민학교 시절 그림일기 쓰고 벼름박에 하루의 일과를 다이어그램으로 그려 붙여놓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일단은 매일 반복해서 해야 할 일들부터 하루하루의 일과에 적어 넣었습니다. 아침 기상은 평상시 출근시간과 동일한 5시 반에 무조건 일어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6시에는 무조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조깅에 나섭니다. 한 달 동안 매일 10km씩 총 300km를 뛰기로 계획합니다. 1시간 반 정도 조깅하고 와서 샤워하고 8시 출근길에 나서는 와이프를 학교에 모셔다 드립니다. 와이프 출근길을 편하게 모셔다 드릴 수 있는 기회가 다시는 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매일 출근길 모셔다 드리기로 했습니다, 다시 집에 돌아오면 9시. 간단히 식사를 합니다. 평소 출근 때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지만 쉬는 동안은 챙겨 먹어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10시까지 지금처럼 늦어진 아침 글로 생각을 정리합니다. 글을 보내고 잠시 쉬면 오전 일과가 후루륵 흘러갑니다. 점심때는 그동안 일상에 바빠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과 잡아놓은 약속들을 실행하러 나갑니다. 정신없어 사놓고 읽지 못한 자연과학 책들도 손에 잡아 봅니다. 자연과학 공부에 지나쳤던 동영상 강의도 재생해 봅니다.
그리고 하루 이상 긴 시간이 소요되는 이벤트들을 적어놓고 실행을 합니다. 가족여행으로 2박 3일 강릉, 속초 동해안 일대를 다녀오고 지인이 편집장으로 있는 여행잡지의 취재로 호미곶 해안 둘레길을 1박 2일 동행해 사진도 찍고 원고도 씁니다. 이번 주에 온라인으로 그 여행기(http://www.ktsketch.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59)가 공개되었습니다. 그동안 주중에 다니지 못했던 골프도 고등학교 친구, 사회에서 만난 지인 모임, 동네 아파트 연습장 월례회 모임 등등 5 차례 출격해 봅니다. 주말에 비싼 그린피로 나가기를 망설였는데 좋은 기회 삼아 주중에 신나게 잔디를 밟아 봅니다. 여러 번 계속 치게 되니 스코어도 컨디션 좋으면 79타까지 나옵니다. 역시 골프는 필드에 자주 나가는 놈이 잘 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놀기만 한 것도 아니었군요. 이번 학기 대학원도 등록했는데 계속 온라인 강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월요일, 수요일 저녁 강의라 충실히 온라인 강의에 임하고 매주 일요일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137억 년 우주의 진화' 강의도 재개되어 참여하고 있습니다. 아 현충일이었던 6월 6일 토요일에는 '정동길 근대건축물 문화해설' 답사에도 참여했군요.
나름 꼼꼼히 한 달 스케줄을 짜고 흐트러지지 않도록 긴장을 했던 탓에 계획했던 일정들은 대부분 소화했습니다. 아침 조깅도 목표한 300km에는 못 미쳤지만 220km는 뛰었습니다. 여행 가고 골프 가느라 아침 일찍 움직이는 날을 제외하고는 모두 뛰었습니다. 나름대로 성공한 한 달로 자부하고 치부해도 될까요? 덕분에 한 달이 지난 오늘 아침 체중은 66.9kg입니다. 한 달 전보다 2kg 정도 줄어든 몸무게입니다.
계획한 대로 움직인 한 달이지만 중간중간 불안한 마음과 심경은 어쩔 수 없습니다. 특히 오후 약속이나 강의가 없어 집에 있는 날이면 자연히 거실에서 TV와 함께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어느 날 우연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줄거리가 인생 막장을 사는 군상들의 처절한 삶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보다가 "나도 저런 인생 막장에 들어가는 것이 남의 일이 아니겠구나"하는 생각이 퍼득 들었습니다. 할일없이 집에서 말 그대로 시간을 죽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인생 나락의 길은 정말 한 순간임을 여실히 깨닫게 됩니다.
이제 내일이면 다시 직장으로 복귀하여 정신없는 일상을 맞이할 것입니다. 마주하는 업무에 가슴 떨릴 테고 찾아오는 방문객을 맞이하는데 웃음과 시원한 커피 한잔을 같이 할 것 같습니다. 무언가 나의 노력을 들여 이루어내고 함께 할 일들이 있는 직장이 있다는 행복에 피곤한 줄 모를 것 같습니다. 물론 2~3일 지나면 또 반복되는 업무에 지겨워할 테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쉬는 시간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일의 귀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일,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만드는 시간이었으니 말입니다. 소중하고 귀한 시간을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하겠습니다. 모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