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는 인류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합니다. 코로나 19 발생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언컨택트 시대의 도래'니 하는 사회 문화적 현상은 사회학자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해야 할 일이고 저는 오늘 코로나 19가 불러온 인간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코로나 19가 본격적으로 만연되기 시작한 3월부터 항공업계는 국제노선을 90% 이상 운항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국부적 전쟁이나 사스와 같은 전염병이 돌았을 때도 해당 지역의 일부 노선만 운항 중단이 되었지 이번처럼 전 세계 항공사가 한꺼번에 운휴를 하고 노선이 중단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서로 국경을 닫은 나라도 있고, 닫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입국 시 2주일간 격리를 해야 해서 실질적 쇄국의 상태나 다름없는 지경입니다. 아직도 언제 항공기들이 예전처럼 하늘을 날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아니 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더 많습니다.
이런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항공사들은 휴업을 하고 직원들이 돌아가며 휴직을 하며 버티고 있는 수준입니다. 제가 소속된 회사 역시 직원 70%가 10월 말까지 6개월 동안 휴업에 들어가 있을 정도입니다. 이러다 보니 코로나 사태 이전에 하던 업무 형태하고는 완전히 다른 현상이 벌어집니다. 비용 집행을 거의(아니 완전히) 하지 못하는 처지이다 보니 그동안 비즈니스상 관계를 맺고 있던 실무자들의 연락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거짓말 안 보태고 코로나 이전에는 한 달에 많게는 협찬 요청 공문 메일이 300여 건 이상 접수되는데 프린트해서 모으면 책 한 권씩 나옵니다. 그리고 하루 방문객이 적게는 10여 명에서 많게는 30여명, 전화 및 문자는 50여 건 정도라 사람을 피해 다녀야 했습니다. 업무차 찾아오는 사람 대면하느라 아예 제 자리에 앉아있는 시간보다 사무실 밖에 있는 접견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 19 사태로 인하여 비용 집행이 중지되자 업무상 접수되는 협찬 요청 메일은 한 달에 10건 정도밖에 안되고 찾아오는 사람도 지금은 아예 인적이 끊겼다고 표현해도 맞습니다. 전화나 문자 또한 가뭄에 콩 나듯이 보이는 정도입니다.
협찬 지원업무는 제가 맡고 있는 일의 일부임에도 '제일 스트레스받는 업무'중 하나입니다. 사람을 만나고 요청을 들어주고 가부간의 결정을 알려야 하는데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 비즈니스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수 싸움을 하고 상대방의 요청을 적절히 받아들이고 적당히 거절하는 요령이 필요한 업무이다 보니 상당히 피곤합니다. 업무성과를 평가하기도 애매합니다. 매달 임기응변식으로 지나가는 일의 반복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인해 비용 집행이 중지되자 관련업무도 따라서 멈추었습니다. 먹이를 놓친 하이에나들이 사냥 목표를 바꿀 수밖에 없습니다. 물고 뜯어봐야 나올 고기가 없으니 스스로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용 집행이 중단된 두 달 만에 완전히 조용해졌습니다. 가끔 동향 파악하러 기웃대는 정찰병만이 보일 뿐입니다.
두 달 동안 흘러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돈을 좇는 사람'들의 실상을 목도하게 됩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일 겁니다. 돈을 좇는다는 것이 말입니다. 돈을 좇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돈도 안 되는 사람과 회사를 찾아갈 일도 없고 전화할 일도 없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요청을 하고 업무 협의를 한다는 것은 두드리면 무언가 진행되는 일의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정하지만 자본주의 비즈니스의 민낯입니다.
한편으로는 반성도 해봅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사무적으로 응대하고 답변하고 업무처리를 해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내가 지금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처지가 되자, 그저 연결될 비즈니스가 없으니 연락을 끊게 되는 그런 관계로 만든 것은 아닌가 말입니다. 그래도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차 한잔으로 짧은 시간이나마 만나주고자 했던 본심이 묻혀버린 듯해 안타까운 마음도 있습니다.
'던바의 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회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개인적인 숫자가 150명이라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무슨 일이 있을 때 슬퍼해주고 기뻐해 주는 '공감 집단'은 12명 정도라고 합니다. 이 숫자들이 더 많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그 사람들에게 할애되는 시간은 줄어들게 됩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되려면 최소한의 시간을 들여야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결국 물리적 시간과 정서적 에너지 투자의 한계로 인해 그 숫자 이상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가만히 내 주변의 숫자들을 들여다봅니다. '던바의 수'에 근접한 숫자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봅니다. 당연히 그대 이름이 불러집니다. 그리고 두 달 사이에 연락하지 않고 연락이 끊긴 사람들의 이름도 하나씩 지워봅니다. 세상의 인연은 그런 것이라고 말입니다. 코로나 19가 사람 관계를 정리해주는 청부업자인 줄 화들짝 깨닫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