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말복이랍니다. 여름 더위의 최강일을 잘 버티기 위해 이름을 붙여놓고 먹거리와 연결시켜 놓습니다. 그냥 기온이 높은 날로만 받아들이면 이름 붙인 수고가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가장 더운 기간이니 잘 버티기 위해 잘 먹어야 한다는 의미부여가 되어야 그때서야 절기가 갖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문화의 공진화'라는 겁니다. 과학적으로 따지고 들어봐야 인과관계를 연결시킬 수 없고 그저 상관관계 정도 일 테지만 문화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오래도록 전승되어 온 것들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특별한 이유를 못 찾는다고 하더라도 생존에 유리한 무언가가 반드시 작동합니다. 그래서 문화가 유지되고 의례와 관습이 살아 움직여 사람들의 심성의 바탕이 됩니다.
말복이라고 들으면 그래도 무언가 힘나는 것을 먹어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퍼뜩 듭니다. 올해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더운 폭염이 한 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어 땀도 많이 흘려 기력이 쇄한 듯하기 때문입니다. 삼계탕이라도 먹으러 갈까? 아니면 민어탕? 스테이크라도 먹으러 가볼까? 뭔가 원기 보충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나요?
심지어 오늘 직원식당에서는 어떤 메뉴가 준비되어 있는지 이메일을 찾아봅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 식당에서는 오늘 한식 메뉴로는 궁중해장국인 효종갱과 메밀전병, 일품으로는 등갈비짬뽕에 과일소스 탕수육을 준비하고 있고, 간편식으로는 에그마요샐러드를 세팅하고 있군요. 지난 초복과 중복 때도 삼계탕을 내놓았기에 말복인 오늘은 그냥 일반 메뉴로 준비하는 모양입니다.
오늘은 점심식사 약속이 있어 나가야 하는데 아직 메뉴는 못 골랐습니다. 단백질 풍부한 탕이나 전골집을 갈 수 있으나 날도 더우니 시원한 물회나 메밀국숫집으로 예약을 할까 합니다.
이렇게 때가 되면 먹고 가야 할 음식이 있다는 것은 건강과 영양학적으로 꽤나 현명한 발상인 것 같습니다. 삼복더위에 먹는 추천 메뉴들을 보면 복달임이라고 해서 대부분 단백질 풍부한 육류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땀도 많이 흘리고 신체 에너지를 많이 쓰기에 영양 보충의 개념이 강한 음식들입니다. 집 나간 며느리도 가을 전어구이 냄새에 돌아온다고 하는데 벌써 전어들이 기름이 차서 고소하다는 소식이 동해안 포구에서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제철 음식이 있다는 것은 자연의 순환에 따라가는 가장 현명한 생존전략입니다.
먹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골에서 모내기를 하거나 가을 추수를 할 때 잠시 쉬는 동안 먹는 '새참'이 떠오릅니다. 아침 일찍 논이나 밭에 나와 뙤약볕이 들기 전에 어느 정도 일을 내놓고 있으면 집에서 어머니와 아낙네들이 머리에 새참을 이고 옵니다. 그 모습은 참으로 정겹고 반갑습니다. 머리에 이고 오는 새참의 메뉴가 무얼일까하는 궁금증이 연결되어 기대감은 새참의 맛을 배가시킵니다. 호박잎에 고추, 막장, 보리밥이 담겨있을지언정 그 맛은 어느 성찬에 비할바가 못됩니다. 거기에 막걸리 한 사발의 시원함은 세상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도시 생활에서 새참 맛은 언감생심입니다. 브런치로 대신하고 오후에는 아페르티보(apertivo)로 저녁 만찬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논두렁이나 밭 근처의 회화나무 그늘 아래에서 먹는 분위기를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그 시간, 그 자리에 맞는 음식이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메뉴 구성이 달라집니다. 새참으로는 인절미 떡 하나와 삶은 고구마, 감자, 옥수수 하나 가 어울리고 브런치 카페에서는 크루아상과 커피 한잔이, 아페르티보로는 카나페와 비스킷, 올리브와 샴페인이 제격입니다. 복날에는 삼계탕이듯이 말입니다.
이제 더위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시한부 날짜를 받아놓은 사형수와 같습니다. 요즘 더위는 떠나기 싫어 심통을 부리고 있다 생각하시고 너그러이 며칠만 받아주면 될 듯합니다. 지 놈이 아무리 발악을 해봐야 일주일 이상 못 가겠죠. 곧 태풍 소식이 한 두 차례 있으면 그 기세에 눌려 차분해질 겁니다. 그때까지 버틸 에너지를 충전한다고 생각하시고 오늘은 기력을 보충할 메뉴를 찾아 맛있게 드시지요. 사는 게 다 그런 겁니다. 복 날 핑계 삼아 맛있게 먹고 땀 한번 훔치다 보면 어느새 선풍기 바람보다 나뭇잎 흔드는 바람이 더 시원해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낮에는 마구마구 뜨거운 바람이긴 하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