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

인생 딜레마 속 모두 갖기, 균형잡기

by THE RISING SUN

이성계는 평생을 전장에서 보냈다. 14세기의 동북아는 크고 작은 나라들이 뜨고 지며 패권을 다투는 총각축장이었으므로, 이성계는 전쟁터에서 태어나 전쟁을 일상으로 살았던 셈이다. 언제 어디서 화살이 날아올지, 창칼이 찔러 들어올지 알 수 없는 생사의 갈림길 위에서의 일상은 어떤 느낌일까. 평화시대를 살아가던 이들에게 전쟁은 어떤 의미일까.


전쟁은 인간 생애의 정수다. 실존은 살아있음을 전제로 가능한 것인데, 그것을 빼앗길 수도 있는 상황에서, 때로는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을 죽여야만 하는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 이성, 감성은 가장 날카롭고 가장 유능할 수밖에 없다. 오늘이 마지막인 인간에게, 오늘은 지금까지 살아온 평생의 경험과 지식, 기억의 집약일 것이다.


또한 인류의 역사에서도 전쟁은 정수다. 생명체에게 경쟁은 불가피하다.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고, 또 번식해야 하는데, 거기에 필요한 것들은 늘 부족하다. 본성이 추구하는 경쟁에 이성을 더하면 전쟁이 된다. 단순한 생존이 아닌, 더 많이 갖기 위해,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인간은 전쟁을 한다. 역사는 궁극적으로 전쟁을 통해 발전해 왔다. 생사의 갈림길에 몰린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이기기 위해, 본성, 이성, 감성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고, 모든 전쟁에서 문명은 퀀텀 점프 수준으로 도약했다.


전쟁은 분명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지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고, 그 안에 던져진 인간은 그 극한적 상황성으로 인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게 된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고, 창업 군주에 대한 과장과 미화는 불가피했을 것이므로, 이후 이성계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야사 등을 교차 검증하되, 가능한 <고려사>를 중심으로 한다.


이성계는 남성 평균 신장이 160cm이던 당대에 180cm 장신에 건장한 체격으로, 활솜씨기 뛰어나 신궁(神弓)으로 불렸고, 고려 최정예였던 가별초(家別抄)를 이끌었다. 단순히 무용뿐만이 아니라, 기동전, 매복전, 기습전을 능숙하게 활용했고, 주변 토착 세력인 여진·몽골계 기병을 운용하는 등 전략과 전술에도 능했다. 군량과 보급로 관리에도 엄격해 장기전에도 강했다.


이성계는 고려 말 최고의 무장이자 전략가로, 북방민족, 한족, 왜구 등과의 수십 차례 전투에서 거의 무패에 가까운 전적을 기록했다. 압록강 유역에서의 홍건적 토벌(1359~1360), 황산대첩으로 대변되는 왜구 토벌(1370~1980), 두만강 유역의 여진족 토벌을 통한 국경 방어선 확보, 원나라의 쌍성총관부 탈환(1356) 등이 대표적 전적으로, 패전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고 전과는 대부분 압승이었다.


가별초는 기병과 보병이 혼합된 형태로 야간 전투와 기습에 특화됐고 활쏘기와 기동전에 능했던, 엄한 군율, 속도, 정확성으로 상징되는 부대였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이성계가 여진족, 몽골족까지 자신의 부대로 편입해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병사의 증원이 아니라, 그들의 전략, 전술에 대한 파악과 활용, 그들의 존중 내지는 감정적 동질의식까지를 전제로 한다. 실제로 이성계와 의형제를 맺고 여말선초에 활약했던 무장이자 조선의 개국공신인 이지란(李之蘭)은 본명이 퉁두란인 여진족 출신이다.


또한 <고려사>에 따르면, 이성계는 부하 장수들에게도 온화하고 포용적이었다. 그들의 의견에 늘 귀를 기울이고 사소한 잘못은 크게 꾸짖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를 장수와 군사들은 마음으로부터 따랐다. 홍건적, 왜구 토벌 이후 항복해 온 적을 살려주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이성계의 인간적 면모는 고려 개혁, 조선 건국을 두고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대립했던 정몽주, 정도전과의 여러 일화들을 통해서도 전해진다. 이성계는 전장에서 이겨야 하는 무장이었지만, 동시에 따뜻한 인간이었다. 인생은 늘 딜레마다. 어쩌면 인생의 성공은, 행복은 그 딜레마 안에서 어떻게 상충하는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할 것인지, 그 사이에서 얼마나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는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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