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원

폭군인가 현자인가

by THE RISING SUN

이방원(李芳遠). 단종 이홍위를 제외하면 조선의 왕들 중 즉위 후 외자로 개명하지 않은 유일한 왕이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이단(李旦)으로, 정종 이방과(李芳果)는 이경(李曔)으로 각각 즉위 후 피휘(避諱)를 위해 외자로 개명한 바 있고, 자기 아들들의 이름을 전부 외자로 지은 사실을 보더라도 이례적임을 알 수 있다. 후대의 평가는 피휘로 인한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는 형식보다는 실질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성격, 넘치는 자존감과 정체성에서 비롯된 본명에 대한 애착으로 갈린다. 두 측면이 모두 반영된 복합적인 상황이겠으나, 이방원이 이름인 ‘방원’을 휘갈겨 쓴 것을 수결(手決)로 사용했던 사실에서 후자에 더 무게가 실린다.


즉위 후에도 본명을 고집했던 일에 대한 해석이 갈리듯이, 이방원이라는 인물과 삶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냉혹한 권력욕의 화신 또는 권력의 실체를 꿰뚫어 본 현명한 군주. 인물도 사건도, 실타래가 복잡하게 엉켜있을 땐 마구잡이로 달려들어선 안 된다. 일단 밖으로 드러난 실마리부터 찾아야 한다. 거기서부터 천천히,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


첫 번째 실마리는 이방원이 정치적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법은 흑백지대, 정치는 회색지대라고 한다. 또 전쟁은 흑백지대, 외교는 회색지대라고도 한다.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법과 전쟁은 위법과 적법, 승과 패에 대한 명확성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정치와 외교(국제정치)는 타협과 모호함, 즉 불명확성을 전제로 한다. 정치에 대하여, 비스마르크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했고, 막스베버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사이의 긴장”이라고 했다. 이성계가 평생을 전쟁의 영역에 있다가 마지막에, 그것도 상당 부분 타의에 의해 정치의 영역에 살짝 걸친 인생을 살았다면, 이방원은 전쟁 속에서 태어났으나 정치 안에서 평생을 살았다. 적극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의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실마리는 세계 정치사에 이방원과 닮은 캐릭터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가까운 중국사의 경우엔 이방원이 선례를 보고 배웠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긴 하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와 무관하게 유사한 캐릭터들이 존재한다면, 그건 보편성을 인정해야 한다.


당태종 이세민은 626년 현무문에서 형제를 제거하고 아버지 고조에게 선위를 받아 즉위한다. 이후 율령·문치로 ‘정관의 치’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명의 영락제는 ‘정난의 변(1399 ~ 1402)’을 일으켜 조카 건문제를 밀어내고 즉위한다. 북벌, ‘정화의 항해’ 등을 추진하고 환관·내각을 활용해 강력한 황권을 구축한다. 그 외에도 조조, 사마의 등 힘으로 권력을 차지한 뒤 안정적 국가체제를 수립한 사례들은 많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상은 사랑과 두려움의 병용이나, 양립이 어려울 땐 두려움이 더 안전하다.”고 했다. 루이 11세는 음모, 첩보, 기민한 외교로 제후들을 굴복시키고 행정조직·통신망 확충으로 중앙집권화를 달성해 ‘거미왕’으로 불렸고, 헨리 7세는 강력한 사법·재정적 장치를 통해 과도한 귀족 권력을 통제하고 왕권을 회복했다. 오스만에서는 반란·내전을 막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왕권을 확보하기 위해 메흐메트 2세 의해 즉위 후 왕의 형제들을 몰살시키는 ‘형제살해법’이 제정된 바 있다.


세 번째 실마리는 이방원의 정치가 과연 옳았는지에 대해, 후대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세종의 훌륭한 업적과 이어지는 태평성대는 이방원의 사전 정지작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평가된다. 이후 훈구파와 공신들의 권력 독점과 전횡, 외척의 득세, 붕당으로 인한 사화들, 세도정치와 망국까지를 돌아보면 이방원의 선택이 필요한 것이었음은 인정할 수 있다. 여기서 왕권이냐, 신권이냐를 다툴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왕권이든 신권이든 권력을 쥐고 행사하는 자가 누구냐는 것일 텐데, 세종은 훌륭한 왕이었다.


이방원의 모든 것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나름의 평가 기준을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우선 정치 지도자의 경우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분리해서 평가해야 한다. 또한 이방원에 대한 모든 기록이 사실 그대로일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어떤 것은 아름답게, 어떤 것은 추하게 변조됐을 수 있다. 그리고 당대와 지금의 도덕 기준은 다르다. 가장 이견이 없을 판단 기준은 후대에 결과로 드러난 그의 결정일 것이다. 이를테면 양녕을 폐위하고 충녕을 택한 것 같은.


The King’s School. 왕이 다니는 학교, 왕이 되는 학교라는 콘셉트로, 조선시대 왕들에게서 나의 삶과 내 자녀의 교육을 위해 도움이 되는 것들을 배우자는 것이 이 시리즈의 목표다. 정치 지도자로서의 이방원에 대한 이야기가, 정치가 내 삶과, 특히 내 자녀의 교육과 무슨 관련이 있나. 정치란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치고, 선거권은 모두에게 있다는 식의 일반론이 아니라면, 정치인이 꿈인 이들에겐 직접적 관련성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 외에는 대부분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사실이다. 그 무관심이란 것도 기대, 실망, 분노를 거쳐 온 무관심이다.


정치 지도자와 일반인의 삶은 다르고, 조선시대와 현재의 도덕 기준도, 성공과 행복의 기준도 다르다. 그러나 동일한 것들이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을 직면하고,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져야 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해야 한다.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배신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기도 한다.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고 그걸 추구한다. 그걸 얻는 걸 성공이라 하지만, 그래서 얻으면 행복하지만, 때로는 아닐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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