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행복

by THE RISING SUN

이방원. 태어났는데 다섯 아들 중 막내였고, 변방의 무장 집안에 형들은 다들 무인인데 책읽기가 좋았으니, 후일 그의 승부욕, 집요함을 떠올려보면, 어렸을 때는 약간의 콤플렉스 같은 걸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콤플렉스 때문에 승부욕과 집요함이 생겼을 수도 있다. 인간의 성향은, 삶은 복합적이어서 원인과 결과로 선후관계를 단정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계속 성공 릴레이다. 10대 시절엔 동북면의 가족들과 떨어져 개경의 계모 강씨와 살면서 공부에 매진했는데, 이때부터 수재로 유명했다고 한다. 16세이던 1382년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해 성균관에 입학했고, 이듬해 바로 과거에 응시해 병과 7등의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한다. 이성계는 이방원의 과거 급제를 알리는 관교(官敎)를 사람을 시켜 몇 번씩 읽게 했고 궁궐을 향해 절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이미 수재로 이름이 알려졌던 상황에서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하면서 개경 귀족 사회의 주목을 받았던 이방원은 고려 최고의 권문세족 중 하나였던 명문 여흥 민씨 가문으로 장가를 든다. 스승이기도 했던 민제(閔霽)의 차녀, 훗날의 원경왕후와 결혼한 것이다.


관료가 최고이자 사실상 유일한 직업이었던 시대에, 최연소에 우수한 성적으로 과거에 합격하고 최고 명문가의 사위가 됐다. 성공의 첫 단추는 거의 완벽하게 끼운 셈인데, 문관의 인사를 담당하는 정5품 전리전랑(典理正郞)으로 일하던 1388년, 22세가 되던 해, 위화도 회군이 일어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그러나 역시 이방원은 자신이 계획한 바를 모두 성공시킨다.


회군하는 아버지를 지원하러 간 형들 대신 개경의 어머니와 동생들을 구조하는 임무를 맡아 무사히 성공시킨다. 실패했다면 정변의 성공 여부와는 무관하게 최영에게 잡혀 죽었을 것이다. 1392년엔 벽란도에서 사냥 중 낙마로 중상을 입은 아버지를 구했고, 이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경에 입성해 정몽주와 공양왕의 반격을 무산시킨다. 그리고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죽인다. 25세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판세를 정확히 읽고,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고, 어떻게든 관철시켰다.


세자 자리를 빼앗겼지만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이방번, 이방석 등을 죽이고 차지한다. 2차 왕자의 난을 통해 반대 세력들을 마저 제거한다. 역시 연이은 성공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은 그대로 성공시키고, 자신의 의사와 달리 진행되는 것들은 판을 뒤집어서 상황을 자신에게 끌고 온다.


이방원은 결국 궁극의 지향점이라 할 수 있는 왕위에 오른다. 한 나라를 얻었으니 물리적 크기로 치면 최고의 성공을 이룬 셈이다. 이후에도 자신의 뜻과 계획에 따라, 원하는 것들을 모두 이뤄내는데, 대부분 강력한 왕권 확립에 방해가 되는 기득권에 대한 정리 작업이다. 먼저 정도전을 죽인 명분이 됐던 사병혁파를, 이제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 추진한다. 함께 목숨 걸고 싸웠던 혁명의 동지들, 수하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병을 모두 거둬들인다. 또한, 자문기능만 남겨 사실상 의정부를 무력화시키고 6조직계제(六曹直啓制)를 실시하여 만기친람(萬機親覽)한다.


다음은 외척 세력 제거다. 여흥 민씨 가문의 민무구, 민무질, 민무휼, 민무회 등 처남 4명을 모두 죽인다. 사돈 가문인 세종의 처가 청송 심씨 집안도 풍비박산(風飛雹散) 낸다. 장인이자 영의정이었던 심온이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는 길에 붙잡아 사사하고, 장모와 그 자녀들은 노비로 만들거나 유배를 보낸다. 심온을 역모죄로 죽이기 위해 동원된 강상인(姜尙仁)도 역시 거열형(車裂刑)으로 잔인하게 처형되는데, 이방원이 왕이 되기 전부터 충성을 다했던 가신이자 공신이었다.


또한 권신들도 일부 축출한다. 이거이(李居易)는 조선 건국, 1차 왕자의 난에서 활약한 공신으로 아들 둘을 각각 이성계, 이방원의 적장녀와 결혼시켰고, 강한 사병 등 무력뿐만 아니라 벼슬이 영의정에까지 이르렀던 당대 최고의 권신이었으나 숙청된다. 이숙번(李叔蕃) 역시 이방원의 등극에 결정적 역할을 한 최측근이었으나 안하무인격으로 권력을 휘두르다 숙청된다.


조선 초기 또 하나의 기득권 세력은 불교였다. 이방원은 왕사와 국사제도를 폐지하고 11개 종단을 7개로 축소하는 등 강력한 억불 정책을 추진한다. 1402년엔 승려들을 천민으로 격하시킨 후 70개의 특별 사찰을 제외한 전국 모든 사찰의 노비와 전답을 압수하고, 1405년엔 삼국시대 때부터 이어져오던 사찰 수천 곳을 불태웠으며, 1417년엔 수많은 불경들을 강제로 압수하여 소각한다.


대게 세속적 의미에서 큰 성공을 이뤘던 권력자들도 유언으로 역설적 속내를 드러낸다. 권력과 쌓아올린 부(富)가 당대 최고였다는, 오늘날까지도 지혜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의 유언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였고, 전국시대 100년을 종식시키고 일본 열도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는 삶이여 오사카의 영화도 꿈속의 꿈이런가”라는 절명시를 남겼는데, 이방원의 유지라고 기록됐거나 혹은 추정되는 내용들은 좀 다르다. ‘이숙번을 유배에서 풀어주지 마라’, ‘황희를 불러 등용하라’, ‘내 상중에 고기를 금하지 말라’ 등이다. 한편 이방원은 아버지의 뜻은 꺾을 수 있었지만, 자식인 양녕은 뜻대로 하지 못했다.


다시 성공으로 돌아와서, 나와 내 자녀의 삶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배움을 얻는 The King’s School로 돌아와서, 이방원처럼 최고의 성공을 이뤄 낸 두 인물의 회고를 확인해 보자.


중고등학교 시절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제일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뜻을 따랐다. 역시 부모님의 뜻에 따라 제일 어렵다는 사법고시에 도전해 역대 최연소로, 그것도 1차, 2차, 3차를 모두 단번에 합격했다. 하지만 내면은 우울증이었고, 늘 죽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변호사가 되어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최고의 로펌에 스카웃됐지만, 주어진 일은 역시 맞지 않았고 힘들었다. 10여 년이 지나 다행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지금은 그 일을 하고 있다.


부모님이 모두 의사였던 어머니는 의사인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고, 4남 1녀를 낳았다. 아들은 의사를 딸은 변호사를 만드는 것이 일생의 꿈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르다. 아버지는 한 번 씨앗을 뿌리지만, 어머니는 그 씨앗을 내내 키우는 밭이다. 게다가 자신의 몸 안에서 생명체를 만들고, 10개월간 품고 있어야 한다. 그건 굉장히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경험이다. 태어난 후에도 무척 귀찮고 고된 양육의 과정이 이어지지만 어머니는 그걸 모두 해낸다. 모성애 때문이다. 그래서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애착은 강하다. 하지만 그 애착에는 사랑뿐만 아니라 집착이 함께 들어있다.” 한때 명문대 의대생이었지만 지금은 수도자로 살아가고 있는 셋째 아들이 한 말이다. 그의 남동생 한 명은 중고등학교 시절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역시 명문 의대에 합격했지만, 합격을 확인한 그날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 또 다른 남동생도 의사가 됐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겠다.”고 선언하고 의사를 그만두었다. 그의 나이 50세였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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