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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속성

부패하는 권력, 견제와 균형으로

by THERISINGSUN Feb 20. 2025

생명체의 본질은 생존과 번식이다. 수요는 무한하고 공급은 유한하다. 경쟁은 불가피하다. 승자는 빼앗고 패자는 빼앗긴다. 경쟁의 대상은 처음엔 식량, 집, 땅 같은 것들이었다가, 어느 순간부터 돈으로, 직책으로, 신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마침내 권력이 되었다. The winner takes it all.


경쟁의 양상도 처음엔 무력 대결이었다. 전쟁이다. 강한 자는 빼앗고, 약한 자는 빼앗긴다. 가장 강한 자가 왕이 되고, 그다음 강한 자가 귀족이 되고, 그다음은 평민이 되고, 나머지는 천민이 된다. 그런데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역사상 그 어떤 왕국도 영원하지 못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나같이 창업(創業), 수성(修城), 경장(更張), 쇠퇴(衰頹)의 사이클을 따른다. 권력의 사이클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여기 한 왕국이 있다. 왕과 신하가 평등하고,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평등하다. 직책의 구분일 뿐 지위의 차이라고 할 수 없다. 민심이 천심이다. 백성이 하늘이다. 군주는 배, 백성은 물이다(君舟民水). 다들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권력은 부패한다. 권력이 클수록 더 크게 부패한다. 맡은 일의 구이었던 것이 신분의 차별이 됐, 세습되어 고착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단절다. 지배층은 모두 왕 노릇하려 하고 피지배층은 모두 노예로 전락한다.


이때 전복이 일어난다. 권력의 부패가 극에 달해 어떤 임계점에 이르면 피지배층과 지배층이 뒤바뀌고 새로운 왕조가 개창한다. 그리고 다시 예의 그 사이클을 따른다. 물론 나라가 내분으로만 망하지는 않는다. 외침으로 망하기도 하지만 그건 무력 대결에 포섭되고, 살아남은 강대국도 언젠가는 망하기 마련이다.


인류는 죽고 죽이는 야만적 권력 시프트의 사이클을 종식시키겠다며 군주정을 퇴출하고 공화정을 도입했다. 공화정의 권력은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부여된다. 이제 권력은 평화적으로 교체된다. 보수와 진보가 권력을 주고받고, 기득권 세력과 개혁 세력이 권력을 주고다.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다.


그런데 그건 먼 옛날, 먼 나라의 풍문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여러 정치 세력들이 하나같이 모두 기득권 세력이 되어버린 것이다. 권좌를 내놓은 적 없는 권력을 격할 때는 진보고 개혁이었지만, 번갈아가며 권좌에 앉게 되니 바꾸고 뒤집을 수 없었다. 한쪽이 썩으면 깨끗한 다른 한쪽으로 교체했었는데, 양쪽이 다 썩어버린 것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 주변에서 썩지 않은 물을 끌어와서 썩은 물을 밀어내야 하는데 주변에 다른 물도 다 썩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군주정 시대의 권력 시프트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전면 교체되는 전복이었다. 썩기 마련인 권력의 정기적인 교체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공화정 시대의 권력 시프트는 지배층 내에서 팀을 나누어 자기들끼리 권력을 주고받을 뿐이다. 피지배층에게는 주권자라는 허명이 주어졌고, 그 허명의 실체를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선거라는 기회가 부여되지만, 썩은 호수를 통째로 들어내는 것이 아닌 몇 번 휘젓는 것에 불과하다.


공화정의 시대에 지배층, 피지배층을 나눌 순 없다(현 상황의 엄중함을 강조하기 위해 극단적 표현을 차용하였다.). 주권자와 대리인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수많은 국가에서 공화정이 성공적인 정치 시스템으로 검증받았고 또한 자리 잡았다. 현재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내 나라에는 다른 수많은 나라에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성공이 보이않는다.


국민을 대리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뽑아놓은 대리인들은 서로 팀을 나눠서, 마치 제때 교체해 가며 권력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듯 쇼만 하고 있다. 국민들은 호수가 썩어서 악취로 숨을 쉴 수조차 없으니 강둑을 허물어 깨끗한 물을 끌어들이든, 초강력 펌프를 설치해 썩은 물을 퍼내든, 신속한 조치를 이행하라고 명령하고 있는데, 대리인들은 무사태평한 듯 음풍농월하고 허송세월하며 매일 카메라 앞에 나와서 시늉만 하고 있다.


나는 대통령으로서, 고이면 썩는 물처럼 부패하기 마련인 권력이 늘 깨끗함을 유지하도록 하겠다. 새 물과 충분한 산소가 상시적으로 공급되어 항상 깨끗함을 유지하는 호수처럼, 완벽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여 원천적으로 썩을 수 없는 권력을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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