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대국민 행정서비스 실태

친절, 신속, 효율, 만족, 혁신

by THE RISING SUN

집과 회사를 오고 가면서 매일 두 번씩 건너는 다리가 있는데, 최근 이상하게 흔들리는 느낌이 들어서 인터넷 포털에서 ‘정부’, ‘행정’, ‘안전’ 등의 키워드로 검색해 봤다. ‘대국민 행정서비스 센터’라는 곳이 나왔다.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대국민 행정 만족도 대상 수상”, “친절도 최우수기관 선정”, “국민이 뽑은 정부혁신 대상”같은 홍보 팝업창이 계속 떴다. 또한 “정부에 대한 모든 것을 안내해 드립니다.”, “행정에 대한 모든 것을 처리해 드립니다.”, “만족스럽지 못한 서비스를 신고해 주시면 신속하게 조치하겠습니다.” 같은 배너들이 잔뜩 있어서 어디를 눌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사이트 맨 아래쪽에 콜센터 전화번호가 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들리고, 통화 내용이 녹음된다는 멘트가 나오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AI였다. 1번부터 정부업무를 나열하면서 원하는 항목의 번호를 선택하라고 하는데 30번을 넘어가는 것 같았다. 내가 찾는 항목이 없어서 계속 뒤로 가다 보면 끝까지 나오지 않았고, 이미 지나간 거 같기도 한데 번호가 기억이 안 났다. 그나마 제일 유사한 항목의 번호를 눌렀는데, 번호를 너무 늦게 눌렀다며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다섯 바퀴쯤 뺑뺑이를 돌고 나니 힘들어서 그냥 전화를 끊었다.


하루 연차를 내고 직접 찾아갔다. 대국민 행정서비스 센터는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좁은 문은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다. 아마도 주변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시위대의 무단출입을 막으려는 것 같았다. 시위대가 센터 담벼락에 걸어 놓은 플래카드와 들고 있는 피켓에는, “행정서비스 만족도 개선하다.”, “행정서비스 친절도 개선하라.”, “행정서비스 신속성 개선하라.”와 같은 문구들이 적혀있었다. 경비원에게 신분증을 제시하고 들어갔다.


센터 안에는 10개의 창구가 있었는데 다 비어있어서 대기하는 소파에 앉아 내부 구조를 살펴봤다. 전체 모양은 피자 조각 형태였다. 전면에는 찾아오는 국민들과 대면하는 창구 10개가 곡선을 그리며 배치되어 있고, 투명한 플라스틱 칸막이로 차단되어 있었다. 창구들 뒤로는 5단계로 테이블이 놓여있는데, 바로 뒤에서부터 7개, 5개, 3개, 2개, 1개 순서로 되어있었다. 5단계의 테이블 앞에는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가리려는 듯 파티션이 설치되어 있었다. 7개 테이블 라인에 앉은 사람은 전체 얼굴이 보였고, 5개 테이블 라인에 앉은 사람은 코부터 보였고, 3개 테이블 라인에 앉은 사람은 눈부터 보였고, 2개 테이블 라인에 앉은 사람은 머리카락만 보였고, 1개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제일 뒤에 테이블 1개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몰랐다. 파티션이 거의 천장에 닿을 만큼 높아서 그 뒤에 공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3시가 다 되어갈 무렵 센터로 들어온 한 남자가 창구 안쪽으로 가더니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은 파티션 뒤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외투를 벗고 구두를 슬리퍼로 갈아 신은 채로 다시 나타났다. 한 손에는 플라스틱 물 컵을 들고 다른 한 손은 칫솔질을 하고 있었다. 센터 입구의 반대쪽 작은 문으로 걸어가는 것이 화장실에 가는 것 같았다.


‘대국민 행정서비스 센터’ 사이트에는 정부의 공식 업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중간에 점심시간이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1시에 도착해서 3시가 넘을 때까지 2시간 이상 기다리는 동안 창구에 나타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유일하게 나타난 사람이 그 남자였다. 3시 넘어 센터에 들어와서 양치질하면서 화장실에 간, 천장에 닿을 듯 높은 파티션 너머, 피자 조각의 제일 안쪽 뾰족한 공간의 주인인 남자다.


2시가 되자 센터 안으로 들어오는 국민들이 빠르게 늘었다. 대기 공간 소파에 빈자리가 없어서 서있는 국민들도 많았고, 3시가 되자 대기표 번호가 30번을 넘어갔다. 그때까지도 창구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창구 뒤 테이블은 2시부터 채워지기 시작했다. 7개 테이블 라인, 5개 테이블 라인, 3개 테이블 라인, 2개 테이블 라인순서대로 3시에 마무리됐다. 그리고 3시가 좀 지나자 그 남자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 남자가 양치질을 끝내고 돌아와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간 후 마침내 1번 창구에 사람이 나타났다. 창구 위 전광판에 번호표 숫자 켜지면서 ‘딩동’ 소리가 났다. 나는 1번 창구 앞에 가서 앉았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매일 건너는 다리가 흔들려서요.”

“그건 제가 도와드릴 수가 없는데요.”

“네?”

“다리는 저희 센터 업무가 아니라서요.”

“사이트에는 모든 걸 안내하고, 처리한다고.”

“그냥 써놓은 거고, 실제로 그럴 순 없거든요.”

“네?”

“보시다시피 저희들이 그걸 다 할 순 없거든요.”

“그럼 무슨 일을 하는 거죠?”

“저희가 많은 일을 하고는 있습니다만…….”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창구 뒤로 늘어선 테이블 쪽으로 눈을 돌렸는데, 첫 번째 줄 7명 중 4명은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있었고, 두 번째 줄부터는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있는 건지 파티션 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저 뒤에 있는 사람들은 뭐하는 거죠?”

“다들 맡은 업무가 있어서 처리하고 있습니다.”

“2시간 됐는데, 딱히 하는 일이 없던데요?”

“그게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뭐라고요? 직급하고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저는 계약직입니다. 직급이 따로 없습니다.”

“이름은요?”

“이름도 없습니다.”

“뭐라고요? 지금 나랑 장난하는 겁니까?”

“계약직은 원래 이름이 없습니다.”

“직급도, 이름도 없고, 그럼 담당 업무는요?”

“담당하는 업무도 따로 없습니다.”


더 할 말이 없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콜센터에 전화를 해도, 센터에 직접 방문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창구 뒤로는, 첫 번째 줄 7명 중 7명이 모두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있었다. 뒤에 기다리는 국민들이 많아서 더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다리가 흔들리는 거 같다고요.”

“네.”

정부가 뭐라도 해야 되잖아요.”

“건너실 때 주의하시고요.”

“네?”

많이 흔들리면 다른 다리를 이용하시고요.”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5화불의가 정의를 이길 수 없는 이유